파키스탄 스와트 지구에서 자치권을 확보한 탈레반이 스와트 인근 부네르 지구까지 장악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인구 100만명의 부네르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110㎞ 떨어져 있다. 유명한 수피사원이 있어 파키스탄 전역에서 무슬림이 찾아오는 곳이며, 파키스탄 북서부 중심 도시 마르단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NYT는 23일 "탈레반이 부네르를 장악했다고 해서 당장 이슬라마바드가 위험에 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외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통치능력에 의구심이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파키스탄 관리는 "탈레반이 부네르를 장악하고 다시 마르단까지 손에 넣으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부네르에 이어 스와비 지구를 노릴 가능성도 있다. 스와비 지구에는 북서부의 중심 도시 페샤와르와 이슬라마바드를 잇는 주요 간선도로가 있어 만약 탈레반이 이곳을 장악하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전체가 탈레반의 영향권에 들어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탈레반은 2월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스와트 지구의 자치권을 확보한 이후 현지에 군사 훈련소를 설치, 군사력을 키운 후 22일 소수 경찰병력이 지키고 있는 부네르 지구를 장악하고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민간 단체에 철수명령을 내렸다. 탈레반 지휘자 모하메드 카릴은 AFP통신에 "이 지역에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고 무슬림 판사를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네르의 한 여성 주민은 "탈레반이 모든 곳을 장악했으며, 그 과정에서 경찰이나 공무원이 저항하지 않았다"고 NYT에 증언했다.
이와 관련,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2일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 극단주의자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것"이라며 "핵 보유국 파키스탄의 안정이 위협 받으면 미국과 전세계의 안정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뮬렌 미 합참의장은 이날 이슬라마바드를 2주만에 다시 방문해 미국 정부의 우려를 파키스탄 정부에 전달했다.
이 같은 우려에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탈레반과 맺은 평화협정이 지켜지지 않으면 협정 자체를 재검토겠다"고 밝혔다. AP통신은 23일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을 견제하기 위해 부네르에 병력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현지 일간 더뉴스는 부네르를 장악한 탈레반이 또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이번에는 만세라 지구를 공략하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파키스탄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자미아트 울레마에이슬라미(JUEI)의 파즐우르 라만 총수는 전날 국회에서 "탈레반이 만세라 지구 인근 칼라 바카까지 진출했으며 조만간 타르벨라 댐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더스강의 타르벨라 댐은 엄청난 저수용량을 갖추고 있어 이곳이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면 정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