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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약의 재앙… 흘러흘러 다시 내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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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약의 재앙… 흘러흘러 다시 내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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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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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주부 김모(40세)씨는 최근 이삿짐을 싸면서 거실 장식장과 책상 서랍 등 이곳 저곳 굴러다니는 약을 모두 정리했다. 먹다 만 해열제와 감기약, 온갖 연고와 처방조제약 등 사용기한도, 효능도 알 수 없는 약들이 온 집에 가득했다. 시럽은 싱크대에 쏟아 버리고, 알약과 조제약은 쓰레기 봉투에 싸서 내다 버렸다. 김씨가 버린 약은 과연 흘러흘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환경 전문가들은 "버려진 약들은 여과 없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 환경 재앙이 돼 우리들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하수처리장은 의약 성분을 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정 내 폐의약품도 폐건전지처럼 분리수거를 하는 제도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집에서 쓰던 의약품이 하천을 오염시키는 경로는 다양하다. 일단 변기나 싱크대로 버려진 물약은 그대로 강으로 흘러간다.

박정임 순천향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하수처리장은 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와 COD(화학적산소요구량) 정도만 관리할 뿐, 의약성분을 걸러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알약도 문제인데, 비가 오게 되면 쓰레기매립장 침출수를 통해 지하수로, 다시 하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현재 우리나라 쓰레기 처리는 70%가 매립형태로 이뤄지고 있고, 30%가 소각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고도현 간사는 "매립보다 소각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소각 역시 대기오염 물질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면서 "의약품에 대해서는 일반소각이 아니라 고온의 '유해폐기물 소각 시스템'을 통해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소변 등으로 배출돼 하천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약 성분이 약에 따라, 또 환자에 따라 체내에서 모두 섭취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항생제 등 약물 남용 정도가 다른 선진국가에 비해 유난히 높기 때문이다.

하천으로 흘러간 의약품이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2007년 국립환경과학원의 4대강 조사에 따르면 항생제, 소염제, 해열진통제 등 조사대상 의약물질 17종 가운데 진통해열제인 아세트아미노펜 등 인체용 약 성분이 7종이나 검출됐다.

인체용 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것은 축사 등에서 흘러나온 폐수 뿐 아니라 일반 가정 등을 통해서도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환경부 조사에서도 4대강에서 항생제 등 15종의 약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감기에 걸리면 한강 물을 퍼 마시면 된다는 말이 우스개 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물론 4대강에서 검출된 양 성분의 농도가 아직 인체에 직접적으로 유해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현재 인체용 약 성분은 1,200여종인데 지금까지 검사는 몇 개 성분의 유무만 따졌을 뿐"이라며 "진짜 문제가 되는 건 하천에 한꺼번에 유입된 의약품들이 생태계에 '칵테일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칵테일 효과란 두 가지 이상의 화합물을 섞을 때 예상치 못한 유해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환경운동연합 고 간사는 "캐나다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피임약 등으로 쓰이는 호르몬제를 미량(농도 5ppt) 풀었을 때 3년 만에 송사리류의 번식이 중단되기도 했다"면서 "잔류 의약품 성분이 어류 개체 수의 감소를 불러오거나, 암컷과 수컷의 성비를 변화시켰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천으로 흘러간 약 성분이 앞서 김씨가 시럽을 버렸던 싱크대 수도꼭지를 타고 다시 가정으로 귀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교수는 "해외에서는 음용수에서 의약품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면서 "극미량인 약 성분을 검사나 정수 과정에서 걸러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밀 검사를 하기 전에는 수돗물에 약 성분이 없다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해진 기간만 먹는 약과 달리, 물은 평생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하천에 남아 있는 미량의 의약품 성분도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항생제는 슈퍼박테리아와 같은 내성균을 생태계에 만들 수 있어, 사람들이 이 균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유럽 대부분 국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약사들이 자체적으로 폐의약품 수거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2007년에 들어서야 서울에서 시범실시에 들어갔다.

서울은 이를 통해 지난해 9,400kg을 수거했다. 또 작년부터는 주요 광역시로 시범실시를 확대해 집에 있는 약을 가지고 가면 약사가 복용 가능한 약과 폐기해야 할 약을 구분해, 폐기 약은 별도 수거함에 보관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고 간사는 "의약품의 생태계 교란을 고려하면, 가정 내 폐의약품도 쓰레기종량제와 같이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분리수거 법제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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