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기무사 터에서 대학생들의 그림을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아트페어(미술견본시)가 첫 행사로 열린다는 소식에 미술계가 들끓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착공 전까지 비어있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할 계획인데, 그 첫 전시로 7월 29일부터 8월 23일까지 열리는 아시아프(ASYAAF)가 결정된 것이다. 아시아프는 미대생과 대학원생들의 작품을 싼 값에 판매하는 아트페어이다.
기무사 터를 일반에 개방하는 첫 전시인 만큼 당연히 서울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상징적인 전시 기획을 예상했던 미술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지난해 아시아프 첫 개최 때 제자들을 참가시켰다는 대학미술협의회(미대 교수들의 모임) 소속의 한 교수는 21일 "당시 한창 배울 시기의 학생들을 미술시장에 내보내는 것에 대해 교수들 사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학생들이 당장 작품을 파는 것에 급급해 시장의 입맛에 길들여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올해 이 행사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예정지에서 한다고 해 깜짝 놀랐다"며 "미술인, 혹은 미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미술관을 운영한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아이디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교수는 "국립미술관이 대관을 해주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인데 심지어 질이 담보되지 않은 작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코미디"라며 "젊은 작가 발굴의 방법이 그렇게 없느냐"고 비꼬았다. 한 상업 화랑의 대표도 "아무리 행사의 의도를 좋게 봐준다 해도 국립미술관이 들어설 상징적인 자리에서 할 만한 성격은 못된다"고 말했다.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어온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미술계가 10년 넘게 공을 들여 얻어낸 공간이 싸구려 미술품 장터로 전락하는 사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번 일과 관련해 조만간 세미나를 열기로 하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세미나에는 평론가, 작가, 화랑 대표, 건축가, 기획자 등 미술계 인사들이 참여해 기무사 터의 활용에 대해 의견을 낼 예정이다.
정씨는 "서울관 건립 결정 후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청사진을 내놓지 않더니 미술관 본연의 기능과 목적에 위배되는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소통의 부족을 실감했다.
이대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현대미술관을 믿을 수 없다"고 세미나 개최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이번 행사가 못마땅하면 촛불시위를 하라"는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발언이 보도된 뒤 여러 미술인으로부터 "정말 촛불시위라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무사 터의 첫 행사로 아시아프를 결정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다. 문화부는 이 행사를 공동주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용호성 문화부 예술정책과장은 배순훈 관장 발언 이후 비판 여론이 일자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한 문화적 이벤트일 뿐 공식적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오프닝 행사가 아니다.
아시아프에 대해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미대생들을 미술계와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내부에서조차 말이 많다. 학예실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도 미술전문가 입장에서 유쾌하지 않다. 학예실에서 배순훈 관장에게 반대 의견을 냈고, 관장도 이번 일을 내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어차피 문화부 행사이고, 문화부 소속기관으로서 그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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