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남북 당국 간 접촉 이후 개성공단의 운명은 당분간 먹구름이 짙게 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북미관계 개선을 향한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압박 카드를 앞세우고 남한과 게임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원칙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향후 남북관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분은 개성공단이다. 북한은 이날 접촉에서 저임금 등 개성공단에 보장해온 특례 혜택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압박했다. 현재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에게는 매달 70~75달러(한화 9~10만원) 정도의 임금이 지급되고 있다. 남한 중소기업에게는 개성공단 저임금이 가장 큰 유인책이었다. 북한이 이런 남측의 약점을 파고 들며 개성공단의 운명을 남쪽이 선택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정부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또 2000년 현대와의 합의를 통해 보장했던 토지 임차권도 거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토지사용료를 앞당겨 지불토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는 개성공단에 대한 혜택을 없앨 테니 남측 기업들이 알아서 떠나고, 사실상 개성공단 문을 닫자'는 압박이다.
이명박 정부는 햇볕정책의 산물인 개성공단에 큰 애정이 없다. 그렇다고 먼저 문을 닫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남북관계를 완전히 틀어 막겠다는 각오가 아닌 이상 개성공단은 명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개성공단 유지라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청와대 핵심관계자)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의 경우 앞으로도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압박 카드가 무궁무진하다. 임금이나 토지 문제 등 기존 계약 재검토 외에도 ▦체류인원 추가 감축 요구 ▦남측 관계자 공단통행 수시 차단 ▦입주기업 철수 요구 ▦공단 폐쇄 등 단계별로 수위를 높여가며 남한을 몰아붙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개성공단 체류인원 축소, 통행 수시 차단 등으로 개성공단 운영을 통제하면서 자신들이 개성공단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북측은 이번 접촉에서 개성공단 관련 기존계약 재검토 협상을 제의한 만큼 향후 개성공단의 존폐를 놓고 계속 남쪽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큰 논란이 됐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운명도 기로에 섰다. 정부의 기본 방침은 "전면 참여 승인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기 문제에서 전략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PSI 전면 참여 발표 일정을 3차례나 미루면서 북한에 성의를 보일 만큼 보였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핵심 지지기반인 보수층이 PSI 참여 압력을 넣는 것도 부담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도 PSI 문제에서 마냥 양보만 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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