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8시35분께 개성공단 내 북한 중앙특구개발총국 사무실에서 남북 당국자들이 마주 앉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최초의 당국자 간 만남이었다.
북한 대표가 먼저 준비한 문건을 읽었다. 북한은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해 "토지 사용료 지불 유예와 저임금 등 남한에 주었던 모든 제도적 특혜 조치를 전면 재검토한다"고 위협했다. 개성공단 사업을 사실상 재검토 하겠다는 초강경 카드였다. 북한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이전 계약을 재검토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며 "남한은 이를 위한 접촉에 성실히 응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7차례의 사전 실무접촉을 통해 남한이 "유씨의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해 접견하게 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남한 대표가 문건을 읽기 시작하자 북한은 이를 제지했다.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고 끝내겠다'는 각본대로였다. 남한은 할 수 없이 문건을 북한에 전달했고, 북한은 내용을 확인한 뒤 남한에 돌려 줬다.
남한 문건도 강경했다. ▦북한의 긴장조성 행위를 즉각 철회 ▦유씨 신병의 조속한 인도와 개성공단 통행ㆍ체류 제한 조치(12ㆍ1 조치) 해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 중상 중단 등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남한은 또 남북 현안 해결을 위한 차기 접촉도 제안했다.
남한은 특히 유씨와 관련해 "즉각 석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리하면 엄중하게 대처할 것이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북한은 압박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접촉과 무관한 사안"이라고 협의 자체를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대표단은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본격적 협의는 벌이지 못했다. 만남은 22분 만인 밤 8시57분 끝이 났다.
이날 만남은 김영탁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과 문무홍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 남한 대표단이 개성에 도착한 지 약 12시간 만에야 성사됐다. 북한은 회담 절차를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남한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를 보였고 남측도 그저 고개를 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첫 실무접촉에서 회담자 명단이나 의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남한 대표단을 "총국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남한 대표단은 응하지 않고 버텼다. 안하무인식의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은 북한이지만 그대로 귀국하면 '입도 뻥끗 못하고 굴욕을 당하고 돌아왔다'는 비판에 휩싸일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전 정권과는 달리 북한에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 한 명이 북한에 사실상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끝까지 강하게 나갈 순 없었다. 결국 대표단은 회담 장소를 양보했고, 이날 접촉은 북한 주장대로 북한 총국 사무실에서 열렸다.
최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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