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녹색 기업들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에도 불구,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잇따라 투자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 한국의 에너지 환경과 산업적 토양이 녹색 비즈니스를 전개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게 이들 판단이다. 우리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들의 결정에 힘이 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풍력발전기 업체인 덴마크의 베스타스(Vestas)는 20일(현지시간) 독일 하노버에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과 우리나라에 5,000만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풍력발전기 매출이 연 25억달러를 넘는 이 회사는 일단 우리나라에 풍력발전 타워 생산설비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지경부는 베스타스의 투자가 이뤄질 경우 풍력발전 관련 핵심 부품의 수입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첨단 기술도 이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현재 전국에서 가동되고 있는 총 146기의 상용 풍력발전기 중 단 1기를 뺀 145기는 모두 수입산이어서 국산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오스트리아의 태양광 모듈 생산업체인 SSF도 이날 한국에 1억2,000만달러를 투자, 태양광 모듈 공장과 연구ㆍ개발(R&D)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독일의 솔바이(Solvay)도 2,000만달러를 들여 울산에 리튬이온 전지용 전해액 첨가제 제조 설비를 짓기로 했다.
1863년 설립된 솔바이는 전 세계에 166개 자회사를 둔 다국적 화학회사다. 앞서 지난달엔 일본의 소닉저팬(Sonix Japan)도 태양광 모듈 생산을 위한 합작 공장을 세우겠다며 5억5,000만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우리 정부에 신고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녹색 기업들이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는 것은 한국의 녹색 투자 메리트가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선 국가적인 에너지 공급망(인프라스트럭처)이 탄탄하다. 지경부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비즈니스의 경우 결국 이를 생산한 뒤 판매할 때 얼마나 효과적인 공급망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인데,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전력 및 가스 공급망이 잘 갖춰졌을 뿐 아니라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시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녹색 기업들이 한국에 주목하는 근본적 이유는 우리의 반도체 및 철강ㆍ기계 기술의 우수성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의 경우 빛을 전기로 바꾸는 태양전지 기술은 기본적으로 반도체의 웨이퍼를 만드는 기술과 그 원리가 같다.
따라서 이들로선 반도체 강국인 우리와 손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풍력 발전도 결국은 얼마나 강하고 가벼운 발전기 날개(블레이드)를 만드느냐 하는 것이 핵심인데, 우리의 철강 및 기계 산업 수준은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이윤호 장관도 이날 하노버박람회장에서 열린 한국 투자설명회에서 이런 점들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유럽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산업 융ㆍ복합화에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면 최근의 경제위기 극복은 물론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색성장위원회 관계자도 "우리나라처럼 녹색성장법까지 만들어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이런 점들이 외국 투자가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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