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닥 논쟁이 한창인 요즘 정책 당국자들의 과잉유동성 우려가 심상찮다. 얼마 전까지도 돈이 돌아야 한다며 재정 및 통화정책의 완화와 신축성을 외치던 사람들이 갑자기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며 또 다른 버블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걱정하니 무슨 소리인가 싶다. 29조원 대 규모인 사상 최대 추경안의 재원 마련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 명분을 강화하려는 속셈도 읽히지만, 외환위기 경험이나 학계 등의 충고를 감안하면 '위기와 버블의 악순환'을 심각하게 염려할 때도 됐다.
최근 자금시장의 지표는 고삐 풀린 망아지 그 자체다. 6개월 이내에 언제 어디든 움직일 수 있는 단기 부동자금이 800조원에 이르고, 불과 6개월 만에 5%대에서 2%대로 떨어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등으로 금융권 가계부채는 7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2012년까지 투입되는 경기부양 재원은 감세분까지 합할 경우 GDP의 7.4%나 된다.
투자 고용 등 출구는 불분명한데 입구에만 돈을 쏟아 부으니 기업실적이나 시황과 관계없이 주식 부동산이 들썩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말 9조원 대였던 증시의 고객예탁금이 4월 현재 16조원 대로 급증하고, '녹색'이름이 붙은 종목에 묻지마 투자가 잇따르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창구가 3년 만에 다시 붐비는 것이 그 사례다.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육류와 배추 감자 등 채소류, 참외 등 과일 값이 급등해 '서민 식탁'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도 줄을 잇고 있다. 원산지 표시, 계절적 요인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한 탓이지만 지나치게 많이 풀린 돈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아직은 어두운 경기터널을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하지만 터널의 끝이 확 트인 신작로인지 돌연한 낭떠러지인지는 잘 살펴야 한다. '버블은 위기를 낳고 그 위기는 또 다른 위기를 낳는다'는 금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 전 열린 G20 런던 정상회의가 장기 물가안정과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굳이 공동성명에 넣은 뜻이기도 하다. 입구만 보고 출구를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 정책의 끝과 재앙을 잘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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