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이 인체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물질로 밝혀진 것은 1898년 석면이 처음 사용된 지 33년 만인 1931년이다. 그 사이 전 세계에서 수 천명이 중피종이라는 치명적 암으로 사망했다. 산업분야에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기 전에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선진국의 엄격한 관리 모른체
중피종 발생은 석면 사용과 비례해 증가하는데, 30~40년의 오랜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야 석면 사용을 금지한 것을 고려하면 향후 20년간 국내 중피종 발생은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다. 이번 석면 탈크 사건은 석면에 의한 위험이 우리 생활 주변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은 일찍부터 석면 피해에 주목해 탈크의 석면 오염방지 대책을 마련해왔다. 미국과 유럽은 특히 베이비파우더 등 어린이 용품에는 '석면 0% 기준'을 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해외의 이런 흐름에 둔감했다. 더욱이 자체 연구용역 보고서에 담긴 경고조차 무시하고 심지어 은폐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06년 식약청 용역보고서 '의약품 첨가제 방 구축사업 결과보고서'는 의약품 정제와 캅셀제에 많이 쓰이는 탈크가 석면에 의해 암을 유발할 수 있어 '무석면 등급'이 사용되고 있다며 탈크 속 석면의 위험성을 명시했다. 이 보고서는 또 탈크가 석면에 오염되면 유아에 노출돼 장기적으로 독성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도 언급했다. 식약청은 이 같은 내용을 의약품 첨가물 인터넷 홈페이지(addrug.kfda.go.kr)를 통해 홍보까지 하고도 정작 국민 안전을 위한 조치는 하지 않았다. 보건 당국이 '석면 탈크'의 위험성을 알고도 관리 제도를 만들지 않았다는 의혹을 살만 한 것이다.
석면의 위험성이 사용후 33년이 지나서야 인식되었듯이, 지금도 산업 현장과 생활 주변에서는 유해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화학물질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해화학물질의 엄격한 안전관리를 위한 새로운 제도인'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 책임 하에 독성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화학물질의 독성평가를 시행해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채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 조치다.
이 제도에 따라 유럽에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관련 화학물질의 독성평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REACH와 같은 안전관리 제도는 화학물질 뿐만 아니라 식품의약품 관리에도 필요하다. 제대로 독성평가를 받지 않은 채 사용되는 식품 내 화학물질과 의약품에 대해서는 독성평가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각각의 유해성분 기준을 정해 관리해야 한다.
제도적 강화ㆍ지원 서둘러야
지금처럼 정부의 식품관리 부처가 나뉘어진 상황에서 효율적 안전관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식품안전 관리를 한 부처로 일원화하고, 통합인 식품 유해물질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의 식약청 인력은 대부분 인ㆍ허가 업무에 배치돼 있어 안전관리나 사후관리 역량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선진화한 식품ㆍ 의약품 관리를 위해 식약청 인력을 늘리고 전문성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 선진국이란 유해 식ㆍ의약품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앞선 행정관리 체계를 갖춘 나라다. 안전한 식ㆍ의약품 관리는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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