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21일 개성공단 남북 당국 간 접촉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되느냐에 따라 한반도 위기지수 뿐 아니라 정부의 대북정책 평가도 좌우될 전망이다.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을 억류한 채 "서울이 군사분계선에서 50㎞"라고 위협하는 북한의 안하무인성 주장에 정부가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북한은 억류 직원의 신변 안전 문제와 개성공단 운영에 관한 위협성 주장을 내놓을 게 분명하지만 북한을 마구 다그치기도, 그렇다고 북한의 주장에 끌려 다닐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달 30일 현대 직원을 체제 비판 혐의로 체포할 때부터 이 같은 우려는 예고된 상태였다. 북한은 직원 억류 카드를 손에 쥔 채 "남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는 선전포고"(3월30일 조평통) 주장을 시작으로 장거리 로켓 발사(5일), 외무성의 6자회담 불참 및 핵개발 재개 선언(14일), 인민군 총참모부의 군사 도발 위협(18일) 순으로 총공세에 나섰다. 위기를 고조시키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정부의 대처는 정교하지 못했다.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 근본적 한계였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남북관계에서 포용정책을 부정하고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를 상실하면서부터 예고됐던 상황이다. 칼자루를 쥔 북한을 응징하자니 한반도 정세가 걱정이고, 그렇다고 북한을 설득할 환경도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국책연구원)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PSI는 남북관계와 별개"(18일 외교부)라고 하면서 개성공단 억류 직원의 신변 안전 때문에 PSI 발표를 연기하는 논리적 모순을 연출하면서 망신살도 뻗쳤다. 정쟁으로 비화한 PSI 참여를 밀어붙인 외교부나 수순을 조율하지 못한 청와대에 책임론 지적이 쏟아진다.
정부가 만회할 길은 있다. 정부는 일단 21일 접촉에서 직원 억류는 남북 합의 위반이라는 점을 강하게 지적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의 우려 등을 전하며 북한을 설득할 예정이다. PSI와 개성공단 폐쇄를 연계한다면 "개성공단은 계속 가동돼야 한다"는 입장과 함께 북한의 부당성도 따질 계획이다. 물론 "이제 PSI 발표 시기는 남북관계 변수에 따라 조정될 수도 있다"(정부 고위 당국자)는 식의 유연한 전략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21일 접촉에서 대화나 협상보다는 일방적 입장 통보로 나올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접촉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위기는 고조될 수밖에 없다. 정부도 "뒤통수만 맞았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참 어려운 국면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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