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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用 아랍어' 제2외국어 교육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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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用 아랍어' 제2외국어 교육 비웃는다

입력
2009.04.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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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서울 서초고 3년 이모(18)군은 최근 교육방송(EBS) '인터넷 수능 아랍어' 강좌에 회원으로 등록했다. 아랍어의 자모 조차 모르는 이군은 "수능 점수를 따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친구들 얘기를 듣고 등록했다"고 말했다. 이번 수능에서 그는 아랍어를 제2외국어 과목으로 선택할 계획이다.

상위권 재수생들이 주로 다니는 서울 강남대성학원은 이달부터 아랍어를 종합반 제2외국어 정규 수업으로 편성했다. "고득점에 유리하니 강좌를 만들어 달라"는 학생과 학부모의 성화 때문이다.

이 학원 김명준 부원장은 "제2외국어 선택 전체 학생의 18% 정도가 아랍어"라며 "야간반과 주말반을 합치면 아랍어 수강생은 190여명 정도 된다"고 귀띔했다.

일선 고교에서는 가르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어 '홀대 받는 외국어'로 여겨지는 아랍어가 입시 시장에서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대입시의 블랙홀'인 수능의 제2외국어에서만큼은 응사자수가 가장 많을 정도로 인기 절정이다. 이 때문에 수험생들은 아랍어를 '수능용 언어'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지난해 수능에서 '쉬운 점수따기'가 다시 한번 입증되면서 올해는 아랍어 응시자 수가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 올해 최다 응시기록 경신할 듯

수능에서 아랍어는 2005학년도에 첫 선을 보였다. 첫 해 응시자수는 599명으로 저조했다. 하지만 다음해에는 2,399명으로 응시자 수가 무려 4배 가까이 늘었다. "시간 많이 들이지 않고 점수를 딴다"는 입소문이 퍼진 덕이다.

2007학년도에 5,072명으로 증가했으며, 2008학년도는 전년도 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만3,588명이 응시했다. 제2외국어 전체 응시자의 15.1%였다. 일본어(35.1%)와 중국어(19.85)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지만, 프랑스어(5.4%) 독일어(5.1%) 스페인어(2.2%)를 월등히 앞섰다.

2009학년도에는 더욱 기세를 올려 일어와 중국어도 추월했다. 전체 제2외국어 응시자 9만9,693명의 29.4%(2만9,278명)가 아랍어를 택해 일본어(2만7,465명)와 중국어(1만3,445명)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수능 시험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6월 모의평가 응시 인원이 집계돼야 알겠지만, 2010학년도 수능 아랍어 응시자수는 올해보다 더 늘어날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 아랍어에 왜 몰리나

수능 수험생들이 '아랍어 사랑'에 빠져든 가장 큰 이유는 수월한 득점이다. 가르치는 학교가 전무한 만큼 잘하는 학생들도 적어 전체 평균도 다른 과목에 비해 매우 낮다.

400~600개 단어를 중심으로 출제되는 문제 자체 난도도 비교적 평이해 점수를 조금만 잘 받으면 표준점수가 치솟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시험 영역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표준점수 최고점 100점이 아랍어에서는 매년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고 있다.

2009학년도 수능 성적이 단적인 사례다. 아랍어 원점수 만점의 표준점수는 100점으로, 69점인 프랑스어와는 무려 31점의 차이를 보였다. 원점수는 똑같이 만점이지만 아랍어를 응시한 학생이 프랑스어 선택 학생 보다 31점이나 높은 표준점수를 받은 것이다.

아랍어를 선택하는 수험생 중 상당수는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목표로 하는 상위권 수험생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대학들이 정시모집(인문계열 기준)에서 아랍어를 전형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탐구 영역 2개 과목과 제2외국어 영역 등 3개 과목을 반영하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우 아랍어가 제2외국어 선택과목에 포함돼 있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아랍어는 수험생들의 평균점이 매우 낮고 표준편차도 커 몇 문제를 더 맞추면 표준점수가 껑충 뛰기 때문에 주요 과목 위주로 공부하는 상위권 수험생들이 특히 선호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아랍어 로또' 막을 대책 강구해야

아랍어 지원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으나, '아랍어 로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쉬운 점수 따기에 따른 난이도 조정 실패 시비와 '공교육 무용론'이 그것이다.

류영국 서울 구정고 교장은 "조금만 공부해도 표준점수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있는 시험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다른 과목을 택한 수험생들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난이도 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외대 C교수는 "사교육에 맡겨진 아랍어를 공교육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묻지마 응시'로 치닫는 아랍어 교육의 파행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올해 수능에서는 제2외국어 선택과목간 표준점수 최고점 차이를 줄이는 게 최대 현안"이라고 말해 아랍어 난이도 대책을 강구 중임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공교육이 100% 외면하는 아랍어가 수능 과목이 된 것은 넌센스라는 시각도 있다. 교육과학기杏灌?이에 대해 "고교 정규 교육과정에 아랍어가 들어있기 때문에 수능 제2외국어 선택과목에 자연스레 포함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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