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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책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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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책의 노래

입력
2009.04.2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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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움트는 봄날을 느낄 때 어떤 노래를 부를까. 게다가 동심에 취하고 싶다면 이런 동요는 어떨까.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하지만 이 동요는 책의 노래로 불러도 좋다. 책과 관련된 중요한 두 장면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여기에 글쓰기의 원초적인 장면이 보이지 않는가?

쓴다는 것은 일상어의 숲에서 말을 가져와 일상과는 다르게 사용하는 작업이다. 글쓰기는 언어의 새로운 활용을 통하여 일상과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험과 같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에서 잎은 말이자 언어였다. 여기에 기준을 둔다면, 개나리 꽃잎을 따서 입에 문다는 것은 일상어를 시적인 언어로 바꾼다는 것과 같다. 작가는 개나리 꽃잎을 입에 물고 봄으로, 자연으로, 아지랑이 저편으로 소풍가는 병아리다. 하지만 이 병아리는 독자일 수도 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숲속에서 풋풋한 언어의 이파리를 채취하는 일일 수 있다. 창조적인 읽기는 그렇게 채취된 말의 속도에 따라 의식의 어두운 내면에 봄의 광휘를 뿌리는 놀이이다. 독자는 노란 꽃잎을 입에 따다 물고 밤에서 봄으로, 밝은 들판과 계곡으로 나들이 가는 병아리다. 이것이 또한 독서의 원초적인 장면이 아닌가?

책 속의 언어는 마치 산 속에 묻혀있는 원광석과 같다. 읽는다는 것 혹은 읽고 쓴다는 것은 그 투박한 돌에 천연의 빛을 되찾아 준다는 것과 같다. 글쓰기는 많은 경우 오래된 말과 버려진 개념을 흐르는 삶의 물결 안에서 보석처럼 다시 반짝거리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또 거기에 대해 쓴다는 것은 방치되었던 언어를 시간 속에 숨어 있는 빛의 제국을 여는 열쇠로 만든다는 것과 같다. 그것이 곧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부르는 이 동요에는 어떤 욕망이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읽기의 욕망인지 쓰기의 욕망인지, 또는 성숙의 욕망인지 유희의 욕망인지는 노래하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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