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금속 소재를 공통적으로 활용한 전시들이 눈길을 끈다. 아트페어와 경매 등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은 두 중견 화가, 강형구(55)씨와 박성태(49)씨의 개인전이다. 두 전시 모두 해외에서 함께 열린다.
■ 알루미늄에 새긴 시대의 아이콘
거대한 극사실 인물화로 유명한 강형구씨는 21일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막(5월 17일까지)하는 2년 만의 개인전에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패널에 그린 그림들을 내놓았다.
반 고흐,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들이다. 에어스프레이로 기본적인 색을 입히고 지우개와 면봉으로 닦아낸 뒤, 이쑤시개나 못으로 선을 표현했다.
머리카락은 전기 드릴로 긁어냈다. 눈을 질끈 감고 내리친 드릴의 흔적에서 힘이 느껴진다. 잔주름과 솜털,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은 알루미늄이라는 소재와 만나 한층 더 세밀해졌다.
강씨는 "3~4년 전부터 캔버스를 떠나보고 싶어 수많은 실험을 거친 끝에 1년 전에야 지금의 방식을 완성했다"면서 "알루미늄 그림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른 빛을 내기 때문에 감상자들이 직접 작품을 연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시작 중 '책 속의 반 고흐'는 그가 처음 시도한 설치 작품이다. 가로 3m 세로 2m의 거대한 책을 세우고 그 속에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늦은 나이에 이름을 알린 강씨는 "나는 평생 왕따였다. 왕따 하면 반 고흐 아니냐. 나는 반 고흐를 배신하는 것 같아 담배도 끊지 못한다"며 웃었다.
강씨는 아리라오 뉴욕에서 열리는 전시(5월 7일~6월 20일)에는 버락 오바마와 링컨의 얼굴을 나란히 놓는다. (02)723-6190
■ 방충망으로 되살린 전통 초상화
본래 한국화를 전공한 박성태씨는 테라코타 조각, 설치미술 등 다양한 표현 영역을 넘나들었고, 2003년부터는 방충망으로 쓰이는 철망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만든 부조 형태 작품을 선보여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그는 "테라코타 작업을 하다 보니 무게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러다 우연히 찢어진 작업실 모기장을 꿰매다가, 아하 이거구나, 하는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철망의 씨줄과 날줄을 마늘을 찧는 절구 등 다양한 나무 도구들을 사용해 누르고 찢어가며 작업한다. 손의 감정과 누르는 힘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형상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전통 동양화의 '일획론(一劃論)'과도 닿아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논현동 워터게이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5월 22일까지)에 걸린 '그림자 초상' 시리즈 역시 동양적 미감을 보여준다. 철망으로 빚어낸 섬세한 인물의 형상과 그 뒤로 겹치는 그림자는 육체와 영혼의 교차를 나타낸다. 한지 뒤에 색을 칠하는 한국화의 배채(背彩) 기법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박씨는 "신립 장군의 표준 영정을 그릴 때, 사람의 껍데기가 아닌 내면을 선과 획으로 표현하는 전통 초상화를 입체적으로 재해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신의 철망 작업을 설명했다. 이번 전시작들은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삼지는 않았지만, 그는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한 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박씨는 중국 베이징의 창아트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여는 전시에서는 철망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02)540-3213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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