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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의 힘/ <상> 첨단과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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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의 힘/ <상> 첨단과학의 세계

입력
2009.04.2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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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십은 망망대해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선박 형태의 첨단 시추 장비다.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 수천m 깊이의 심해까지 시추 파이프가 내려간다. 만일 이 파이프가 강풍 등으로 손상되면 대형 사고 발생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드릴십은 초속 50m의 강풍과 8m 높이 파도에서도 제 위치를 3m 이상 벗어나선 안 된다. 드릴십 길이가 250m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움직임이 없는 수준이다. 이는 바람과 파도, 조류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위치를 재빠르게 검색해 제자리로 돌려주는 첨단 기술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드릴십 가격이 대당 평균 8억달러로, 대형 컨테이너선(1억5,000만달러)보다 5배 이상 비싼 이유기도 하다. '조선=용접'이라는 등식은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드릴십과 리그선(반잠수식 시추설비)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빅3'는 DP(Dynamic Positioning)시스템으로 배를 망망대해에 사실상 묶어놓고 있다.

DP시스템은 인공위성과 해저에 설치된 음파발생기라는 이중 안전장치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파악한다. 중요한 것은 위치 파악과 함께 파도에 밀린 배를 제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인데, 여기에는 일반 선박의 프로펠러와는 다른 정교한 추진기가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360도 회전이 가능한 선박 앞부분(3개)과 뒷부분(3개)의 추진기 6개가 24시간 배가 정위치에 있도록 작동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거센 바람과 파도에 맞서 배를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게 드릴십의 핵심 기술"이라며 "이를 위해 각 추진기는 무려 5,000~7,000마력의 힘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은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에서 발주한 드릴십의 절반 이상을 수주하는 등 국내 업계가 드릴십 건조를 싹쓸이하고 있다.

비행기 양력(揚力) 원리를 선박에 적용한 '날개 단 선박' 또한 조산한국의 자랑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선박에 비행기 날개 같은 장치(추력 날개)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추력 날개를 프로펠러 뒤에 붙은 방향타에 십자가 형태로 장착, 프로펠러 회전에 발생하는 힘을 새 동력원으로 활용한 것. 하루 300톤 이상의 연료를 소비하는 대형 컨테이너선은 이를 통해 연 240만달러의 기름값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민계식 부회장은 "추력 날개는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이라며 "앞으로도 새 선형 설계, 독자엔진 개발 등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로 세계시장에서 기술우위를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후발주자이면서도 세계 4위권으로 급부상한 STX의 저력은 과학적 도크(선체 조립을 위한 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웅덩이) 활용에 있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도크 내 혁신적인 공정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것. 대부분 조선소의 도크 회전율(한 도크에서 연간 건조할 수 있는 횟수)이 8~10인데 반해, STX는 도크 하나에서 최대 5척까지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공법(세미텐덤)을 개발해 세계 최대 도크 회전율(13회)을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서울대와 공동 개발한 '시뮬레이션 공법'은 대형 블록(선박 부분품) 등을 가상에서 조립ㆍ이동함으로써 실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없앨 수 있다. 실제 설계상 하자는 없어도, 조립과정에서 블록 모서리가 맞지 않아 제대로 합쳐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달 초 5,500톤 규모의 골리앗 크레인을 운반할 때에도 미리 문제점을 사이버 상에서 점검, 두 달 걸리던 크레인 설치작업을 일주일에 끝낼 수 있었다.

거제=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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