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속도 - 김지녀
천공(天空)이 아치처럼 휘어지고 있다
빽빽한 어둠 속에서
땅과 바람과 물과 불의 별자리가 조금씩 움직이면
새들의 기낭(氣囊)은 깊어진다
거대한 중력을 끌며 날아가 시간의 날카로운 부리를 땅에 박고 영원한 날개를 접는 저 새들처럼,
우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
교신이 끊긴 위성처럼 궤도를 이탈할 때
우리는 지구의 밤을 횡단해
잠시 머물게 된 이불 속에서 기침을 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지만, 묵음의 이야기만이 눈동자를 맴돌다 흘러나와
문득 창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근육과 뼈가 쇠약해진 우주인과 같이
둥둥 떠다니며 우리는 두통을 앓고
밥을 먹고 함께 보았던 노을과 희미하게 사라지는 두 손을 가방에 구겨 넣고는 곧 이 밤의 터널을 지날 것이다
어딘가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새들의 영혼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의 속도처럼
조용히 멀미를 앓으며
저마다의 속도로 식어 가는 별빛이 될 것이다
● 눈을 감고 쭉 걸어보세요. 우리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천문학자 이 선생이 말한다. 지구의 자전 속도(1674.4 km/h) 때문이지요. 우리는 바로잡을 수 없는 운명을 한탄하지만, 속절없이 자꾸 기울어져요. 우주의 빛이 휘어지듯 운명은 휘어지고, 그리운 이는 떠나는군요. 지구의 속도가 우리를 망쳤어요. 마음의 멀미 때문에 신경질을 내고 삐뚜루된 눈을 가진 별들처럼 엇갈리고… 짧은 생애 동안 미끄러운 지표면에 서서 안달복달하며, 아아 이 모든 노력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기 함께 보았던 노을이 지구의 한쪽 어깨 너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김지녀 1978년 생. 2007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 수상 등단.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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