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의 서울예대 예술공학센터 건물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사진 작품으로 변했다. 3층짜리 건물의 전면 유리를 통해 미국 사진작가 자넷 스텐버그의 작품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낮에는 자연광을 통해 내부에서, 밤에는 프로젝터를 통해 밖에서 볼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전통적인 인화 사진이 걸린 것은 물론, 병풍처럼 설치된 디지털 모니터를 통해 스텐버그의 사진들이 영상으로 나타난다. 17일 개막한 스텐버그의 사진전 '풍부한 혼란'이다.
스텐버그는 사진작가이자 시인, 극작가, 영화감독 등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흔히 '칼아츠'(CalArts)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이기도 하다.
자연히 그의 사진에서는 문학적 감수성이 읽힌다. 그의 카메라는 빗물이 흐르는 건물 유리창이나 자동차 표면에 투영된 풍경처럼 반사되어 나타나는 흐릿한 이미지들을 담는다. 원근법이 사라진 사진에서는 피사체의 내부와 외부가 혼합되어 어느 것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한 스텐버그는 "사진에는 1회용 카메라를 사용하고 일체의 디지털 조작이나 합성은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작업을 소개했다. 그가 1회용 카메라를 쓰는 이유는 사진을 시작한 계기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12년 전 멕시코에서 산책을 하다가 한 가게에서 너무 아름다운 장면을 봤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는데 구할 수 있는 거라곤 1회용 카메라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 뜻밖에 한 순간에 존재하는 여러 겹의 층을 발견했다." 그는 "어떤 인공적인 수정도 가할 수 없는 1회용 카메라의 한계가 나에게는 오히려 선물로 느껴진다. 1회용 카메라는 마지막 선택이 아닌 최고의 선택인 셈"이라고 말했다.
스텐버그의 남편이자 칼아츠 총장인 스티븐 레바인도 함께 방한했다. 월트 디즈니사가 설립해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이 대학에서 21년째 총장을 맡고 있는 레바인 총장은 칼아츠의 국제화에 주력, 54개 국의 학생들이 모인 다국적 예술학교를 만들었다.
1,400여 명의 재학생 가운데는 한국인도 100여명이나 된다. 특히 칼아츠가 LA에 운영하고 있는 레드캣 갤러리의 경우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커미셔너인 주은지씨가 디렉터를 지냈고, 현재도 재미동포인 클라라 김이 이끌고 있다.
레바인 총장은 "레드캣 갤러리는 젊고 새로운 작가의 신작을 선보이는 공간"이라며 "디렉터를 뽑기 위해 수백명을 인터뷰했는데 한국의 두 여성은 이런 콘셉트에 잘 맞았을 뿐 아니라 국제 감각과 열정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 학교와 박물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에 있기를 원한다. 레드캣 갤러리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며, 칼아츠의 학생과 교수들은 LA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5월 18일까지.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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