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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누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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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누워 있어

입력
2009.04.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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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전공하는 여학생들과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둘이 단짝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친구가 유쾌하고 발랄하다면 다른 한 친구는 질문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다. 그들은 대학 4학년, 졸업이 바싹 다가왔다. 계속 학업을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또래의 친구들이 어떤 전화 통화를 하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걸어 "뭐하고 있어?"라고 물으면 "누워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그래, 넌 내 친구다"라고 맞장구친다고 했다. 할 일 다 미뤄두고 누워 있거나 근심거리를 안고 누워 있거나 단지 빈둥대느라 누워 있거나. 그 모든 상황이 별도의 설명 없이 그 한 동작으로 다 표현된다는 것이다. 아직은 부모님 슬하에 있어 별 걱정 없이 누워 있을 수 있지만 또 달리 그것밖에는 할 것 없는 무기력한 청춘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취업난에 비정규직, 88만원세대란 말이 나왔을 땐 두 친구 모두 시무룩해졌다.

몇 해 전 일본에 갔을 때였다.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친구가 통역해주었다. 독립할 나이가 넘어서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 부모님 집을 떠나지 않는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 부른다 했다. 여학생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뇌어보았다. 누워 있어. 정말 어딘가에 딱 눕고만 싶은 봄날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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