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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前한일은행 지점장 '10년간의 하루 출가' 엮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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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前한일은행 지점장 '10년간의 하루 출가' 엮어 내

입력
2009.04.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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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은행을 그만둔 뒤 처음으로, 그것도 뜻하지 않게 혼자 걸어야 했다. 내 나이 쉰여섯. 누구에게 말을 걸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도 가슴을 짓누르는 울분과 허무를 어금니 사이로 토해내면서 쉬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1998년 7월, IMF체제로 통칭되는 경제위기의 여파로 한일은행 지점장으로 있다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된 정석희(69)씨의 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같이 명예퇴직을 당한 은행 동기 9명과 함께 가기로 했으나, 아무도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홀로 나섰던 그의 산행은 평상심을 찾게 된 동기들이 차차 합류하면서 '한일선우회'라는 이름의 일요일 정기산행 동우회로 발전했다. 그리고 매주 '나를 찾아 떠나는 하루 출가'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산사를 답사하는 산행이 10년간 계속됐다. <10년 간의 하루 출가>(황소자리 발행)는 그 얘기를 묶은 책이다.

10년 간 정씨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으면서 원망과 분노, 좌절과 열패감이 차분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면서 오히려 과거의 치열했던 일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마음의 길을 열었다.

그가 한일은행 명퇴자들, 이런저런 연유로 모임에 합류한 일반인 도반들과 함께 10년 동안 찾아간 산사는 오대산 상원사를 비롯해 강화 보문사, 서산 개심사, 영주 부석사, 청도 운문사, 봉화 청량사 등 끝이 없다. 도반들과 버스를 타고 산문을 향해 가는 여로에서 정씨는 '법문'을 했다.

그는 "산행 버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켰다"며 "버스에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공부하고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씨의 법문은 고승대덕의 말씀이 아니었다. 은행에서 퇴직당한 40대 후배들과 함께한 산행에서는 "무지, 불필요, 불가능으로 낙인 찍어 지난날 우리가 무시했던 그곳에 가능성과 길이 있다"며 "이곳(산사) 청정법신의 품 안에서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을 관조하면서 잠시 해를 가린 구름의 흐름을 바라보자"고 말했다. 말의 내용보다, 말 끝에 나눈 동우회원들의 눈물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런 그의 말이 곧 법문이었다.

책에는 회원들이 다녔던 절과 관련된 설화, 스님들의 법문,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같은 불교 경전의 핵심도 곳곳에 녹아있다. 정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라며 "요즘 또다시 닥친 경제위기로 실직자가 많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내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출간의 뜻을 밝혔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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