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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 '시설 밖'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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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 '시설 밖' 희망 찾기

입력
2009.04.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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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골방에서 2년여 동안 단 세 번 바깥 출입을 했어요. 창살없는 감옥이었지요."

12세부터 10곳이 넘는 장애인 생활시설을 전전하다 2004년부터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신모(38ㆍ뇌병변 1급)씨는 요즘도 "시설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꾼다"고 한다. 제 시간에 밥을 먹지 못했다고 맞는가 하면, 대소변을 자주 본다는 이유로 밥을 조금만 줘 허기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버려져 오갈 데 없는 처지라 '퇴소'라는 말이 가장 무서웠다.

그런 신씨가 서울 중계동의 임대아파트에서 시작한 '탈(脫)시설' 자립생활은 위험한 도전이었다. 2007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보조인 덕택에 바깥 출입이 많이 나아졌지만, 정부 및 자치단체 지원금 57만원으로 생활하기는 여전히 벅차다. 하지만 신씨는 "햇살을 만끽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장애인 생활시설을 떠나 자립하려는 장애인들의 몸부림이 뜨거워지고 있다. 여전히 '수용'에 방점이 찍힌 장애인 시설에서 벗어나 "사회와 어울리고 싶다"는 꿈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수시로 터지는 장애인 생활시설 운영 비리와 비인격적인 대우는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 정책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열린 '탈시설 권리 찾기' 워크숍에서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겪은 어려움과 자립생활에 대한 바람을 쏟아냈다.

5세 때부터 여러 시설을 돌아다녔던 정모(31ㆍ여ㆍ뇌병변 1급)씨는 2000년 한 시설에서 성희롱은 물론 강제 불임수술까지 받았다고 말했고, 배덕민(42ㆍ뇌병변 1급)씨는 "시골의 한 기도원에서 1년여 생활했는데, 똥통이나 소변통 옆에서 자고 배가 고파서 개밥도 먹어봤다"며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

장애인 스스로 인간적 삶을 포기한 채 '시설병'이라는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다.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는 "장애인 시설이 명목상 장애인을 돌보는 곳이지만, 실상은 장애인들이 사회로부터 추방당해 삶을 포기당한 곳"이라고 말했다.

시설 바깥의 삶이 장애인들에겐 버겁지만, 이들이 '탈시설'을 그토록 염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 3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장애인 생활시설 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290명 중 70%가 퇴소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자립 꿈은 조금씩 현실로 옮아가고 있다. 장애인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그룹홈'이 대표적이다. 기존 장애인 시설들이 장애인에게 나오는 정부 지원금을 착복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탓에, 관리인을 두지 않고 장애인들끼리 모여 살며 직접 지원금을 받는 형태다.

서울시의 경우 현재 시에서 지원하는 145개 그룹홈에서 580여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 생활시설 거주인원이 총 3,0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2003년 시설을 나온 배덕민씨는 4명의 장애인과 함께 그룹홈을 이뤄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기초생활수급비와 후원금을 모아 임대아파트 보증금 1,000만원을 마련해 자립했고 지난해 야학에서 만난 여성 장애인과 결혼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자립하기에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 무엇보다 정부가 여전히 시설 중심의 복지 정책을 펴고, 장애인 자립에는 소홀하다. '장애와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인 김정하씨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장애인을 수용하는 대형 시설을 늘리는 데만 예산을 쏟고 있다"며 "시설에 아무리 투자해봐야, 약간 더 나은 감옥만 늘리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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