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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생 반세기 케인 "대본만 주면 언제든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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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생 반세기 케인 "대본만 주면 언제든 연기"

입력
2009.04.1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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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배우는 영화에서 스스로 은퇴하는 게 아니다. 영화가 배우를 퇴장 시킬 뿐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1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해 아카데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영국의 명배우 마이클 케인(76ㆍ사진)이 연기자의 숙명을 미국의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연설 문구를 빌어 토로했다.

마이클 케인은 17일 미국에서 최신작 <이스 데어 애니바디 데어(is there anybody there)?> 개봉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새 작품에서 그는 노령자 요양시설에 입소했지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는 전직 마술사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AFP 통신 온라인판이 14일 전한 바에 따르면 케인은 인터뷰에서 배우란 최악의 경우 데뷔작을 찍자마자 퇴출 당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며 은막 세계의 '엄정함'을 강조했다.

그만큼 오랫동안 영화계에서 활동해온 원로 배우가 '은퇴'라는 말을 거론하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케인은 "은막을 떠나겠다고 말했는데 누군가가 와서 대본을 주면 은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되는 게 바로 배우"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출연 계획에 대해 "차기작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그렇다고 애써 찾거나 기다리지는 않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대본을 건네면 나는 또 다시 연기를 하게 될 것이다. 다만 하고 싶은 영화의 시나리오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으면 은퇴할 것이다.

그때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진 않겠다. 딱히 무슨 일을 하지는 않고 집에서 요리를 만들고 정원을 가꾸거나 글을 쓰든지 평상시 하던 일을 담담히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인은 반세기에 걸친 연예생활에서 가장 기억되는 이로 1970년 출연작 <최후의 계곡(the last valley)> 의 메가폰을 잡았던 제임스 클라벨 감독을 떠올렸다. 클라벨 감독은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한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 과 <쇼군> 등을 연출했다.

마이클 케인은 <최후의 계곡> 을 촬영하면서 클라벨 감독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때만 해도 다혈질 성격이던 케인은 영화를 찍는 동안 연기가 제대로 안되면 화를 내곤 했다고 한다.

어느날 클라벨 감독은 분통을 터트리는 케인을 세트장 뒤로 조용히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일본군의 포로로 잡힌 경험이 있는 클라벨 감독은 "일본인을 보고 배운 게 있다면 결코 낯선 사람 앞에선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을 너무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충고했다.

클라벨 감독의 말에 자극받아 크게 깨달은 케인은 이후 촬영장에선 격앙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인간인지라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대신 소리를 질러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털어 놨다.

1933년 태어난 케인의 본명은 모리스 미클화이트로 런던 토박이로 성장했다. 5살 때 <론 레인저> 를 본 뒤 할리우드를 동경하게 됐다.

런던연극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과 독일에서 영국군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제대 후 잠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 <케인호의 반란> 에서 힌트를 얻어 마이클 케인으로 이름을 바꾼 그는 1956년 <한국의 언덕> 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50년대 후반 여러 편에 눈에 띄지 않은 역할로 등장하다가 64년 <줄루전쟁> 으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대표작은 <공군대전략> <저격자> <왕이 되려한 사나이> <머나먼 다리> <스웜> <드레스트 투 킬> <리타 길들이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한나와 자매들> <리틀 보이스> 두 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게 한 <사이더 하우스 룰스> <조용한 미국인> <배트맨 비긴스> <프레스티지> <슬루스> <다크나이트> 등이 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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