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맘때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피었다가 지고, 미루나무에 돋은 새 이파리에 떠밀린 잎눈껍질이 비 오듯 잔디밭으로 쏟아져 내렸다. 황사를 적신 가랑비가 하얀 점퍼에 황토색 점을 찍고 시절은 흉흉했지만, 그래도 벚꽃이 피면 청춘의 가슴은 뛰었다. 수천 그루의 벚나무에 활짝 핀 벚꽃이 야간 조명을 받아 더욱 눈부셨던, '창경원'의 밤 벚꽃놀이는 1970년대 말만 해도 청춘의 애정행로에서 빠뜨릴 수 없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동물원과 케이블카, 연못의 뱃놀이로도 유명한 놀이공원이었지만, '창경원'은 역시 서울의 으뜸가는 벚꽃놀이 명소였다.
■1983년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으며 벚나무는 베어졌다. 1909년 '창경원'으로 개명하고, 벚나무를 심은 게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으니,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이다. 우리만 벚꽃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긴 것도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전국의 공원과 거리의 벚나무가 마구 베어져 넘어졌다. 자살공격에 동원한 가미가제(神風) 특공대의 뇌리에 '화사하게 흩어지는 벚꽃'의 이미지를 새겨 넣은 것은 물론이고, 그에 앞서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통합을 겨냥한 '민족주의' 상징물로 벚꽃을 내세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피어 인간과 벌에게 기쁨을 주고, 무심히 지는 꽃이 무슨 죄랴. 더욱이 현재 세계 곳곳에 화려한 봄을 나르는 '왕벚나무'가 실은 한국 자생종이란 설명마저 잇따르고 보니, 벚꽃에서 일본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사고습관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이렇게 벚꽃에 대한 고정관념이 풀리지 않았다면,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벚꽃 길 조성이 전국적 유행으로 번지기는커녕 멀쩡히 잘 있던 벚나무마저 베어져 넘어갔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지난 주말 여의도와 어린이대공원, 남산 등에 몰린 수십만 시민의 즐거움도 많이 줄어들 뻔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벚꽃놀이 명소가 늘어나고 있다. 시가지 전체가 벚꽃으로 물드는 진해, 하동의 '십리 벚꽃길'과 섬진강 길, 제천의 청풍호반, 강릉의 경포대, 군산과 정읍 등 각지의 벚꽃축제가 상춘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1,000년 고도 경주의 벚꽃도 인상적이었다. 호수와 어우러진 보문관광단지의 벚꽃이나 7번 국도의 벚꽃도 좋지만, 대릉원 앞의 넓은 잔디밭과 유채꽃밭 너머 구릉이나 불국사 앞 언덕에 흐드러진 벚꽃은 속이 다 시원하다. 주말에는 지는 벚꽃을 좇아 춘천 소양호로 달려야겠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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