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아반떼룸. 현대차 사측과 노조 지도부 30여명은 이날 1ㆍ4분기 노사협의회를 갖고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노사협의체'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이 자리는 이 달 중순부터 예정된 올해 임금ㆍ단체협상 돌입에 앞서 가진 예비 모임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이날 노사 양측은 "파업 없이 임단협을 조기 타결하자"는데 뜻을 같이했다. 모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노사가 너무도 쉽게 파업으로 가지 말자는 데 동감하는 분위기였다"며 "노사 양측 모두 올해 임단협에 임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고 전했다.
현대차 노사가 매년 임단협 때마다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현대차 노조는 민주노총 내에서도 '강성 선봉 노조'로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사측의 태도도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노조 요구라면 무조건 거부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해 회사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설명하면서 이해와 양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가 이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번 임단협 향방이 노사 선진화와 회사의 장기 생존을 좌우하는 중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차 노조가 그간 걸어온 행보는 합리적인 노사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사간 임단협은 걸핏하면 '파업'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뚜렷한 파업 명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는 엄청난 생산 손실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특히 2006년에는 무려 33일 동안 파업에 들어가 생산 손실 대수 11만8,293대, 손실액 1조6,443억원에 달했다. 파업 이유도 민주노총의 비정규직법 관련 총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임단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치 파업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6월 10일과 7월 2일에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참가를 이유로 파업에 들어가 이틀 동안 생산손실대수 2,392대, 손실액 355억원의 피해를 사측에 안겼다.
하지만 글로벌 불황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올해 상황은 예년과는 판이하다. 노사 모두 파국이 아닌 타협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번 임단협을 무사히 넘기면 불황의 터널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현대ㆍ기아차 입장에선 최대 걸림돌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 사측은 노조 설득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사측은 9일 노조와의 만남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경기 불황으로 현대차 역시 경영 위기감이 팽배한 만큼 노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할 때"라며 "최근 노사가 뜻을 모아 공장간 일감나누기를 전격 합의하는 등 예전과 달라진 노사화합 정신을 이번 협상에서도 발휘하자"고 호소했다.
노조도 "경기가 어려운 만큼 쟁점별로 협상에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고 화답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사내 안팎에선 예년과 달리 7월 말 여름휴가 이전에 임단협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쟁점 사항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차 노조의 올해 임단협 요구안이 가장 큰 변수다. 현대차 노조는 임금 8만7,709원(기본급 대비 4.9%) 인상과 신 차종의 국내공장 우선 생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로 임금 삭감 및 동결이 대세인 상황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 임단협에서 노사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될 것"이라며 "노조가 다소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걸었지만, 전향적인 자세로 협상에 나서 조기 타결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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