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기의 첩보전처럼 거창하지 않다. 총질이 난무하는 범죄 스릴러처럼 과격하지 않다.그래도 충분히 긴장감이 느껴지고, 충분히 즐길 만하다. 산업계의 스파이를 소재로 한 '더블 스파이'는 유쾌한 오락영화다.
미국과 영국의 첩보기관인 CIA와 M16 출신의 클레어(줄리아 로버츠)와 레이(클라이브 오웬)는 업계의 앙숙인 B&R과 에퀴크롬의 보안 담당자로 전직한다. 사실 5년 전 정보를 빼내는 임무로 악연을 맺었다가 사랑에 빠진 이들은 한 몫 챙기겠다고 작정하고 경쟁업체에 포진해 작전을 개시한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서로 처음 만나는 척 실랑이를 벌이는 클레어와 레이가 사실은 치밀한 작전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는 폭로식 구성의 재미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5년 전, 2년 전, 18개월 전 등 과거 시점을 드러내면서 구성하는 반전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반전이 기대할 만하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흥미는 남을 속이는 일이 전문인 선수들끼리 연인이 되었을 때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다. 혼자 사는 레이의 집에서 자신의 속옷을 들이밀며 "어느 여자 것이냐"고 몰아세우는 클레어, 끝까지 잡아뗀 뒤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는 레이, 레이가 유혹한 에퀴크롬 여직원을 심문하면서 "잘못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는 말에 일그러지는 클레어의 표정 등이 그렇다. 끊임없이 서로를 떠보는 아슬아슬한 그들의 대화는 '오션스'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천연덕스러운 유머를 풍긴다.
'더블 스파이'가 무거운 첩보영화가 아닌 유쾌한 유머의 영화라는 사실은 첫 장면부터 드러난다. 앙숙 관계인 B&R과 에퀴크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비행기 격납고에서 만나 육탄전을 벌이는 슬로 모션은 영화의 분위기와 내용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명장면이다. 양사의 CEO 역할을 맡은 톰 윌킨슨과 폴 지아매티 또한 영화에 빠지게 만드는 훌륭한 조연배우들이다.
16일 개봉. 12세 이상.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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