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ㆍ서예가 청명 임창순(1914~1999)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학문, 예술을 조명하는 '방랑연운(放浪烟雲) 청명 임창순' 전이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하는 '글씨&사람' 전의 첫 번째 전시로, 청명이 남긴 유산인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와 청명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다. 청명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유묵을 중심으로 그의 컬렉션, 사진과 유품 등 120여점이 나온다.
전시 제목의 '방랑연운', 즉 '연기와 구름처럼 거슬림 없이 사는 삶'은 청명이 생전에 그의 작품에 자주 찍었던 낙관의 문구다. 그의 실제 삶이 그러했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대구, 부산, 서울 등지를 떠돌며 자유롭게 살았다. 제도권 학교에는 가 본 적도 없었고, 서당 교육이 배움의 전부였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학예연구사는 청명을 "행동하는 지성"이라고 요약한다. 한학자는 비현실적이고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뒤집는 증거들이 그의 생애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구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에는 친일파 학장과 대립하다 사직했고,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있던 1960년에는 4ㆍ19가 일어나자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글씨를 직접 써서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듬해 5ㆍ16 이후 군사정권에 반대하다 대학에서 쫓겨난 그는 1963년 서울 수표동에 태동고전연구소를, 1974년 경기 남양주에 지곡서당을 세우고 수많은 한국학 연구자들을 키워냈다.
한학, 금석학, 서예사학, 서지학 등에 두루 통달해 서화 감식과 비평에서 독보적 안목을 갖고 있었던 청명은 서예가로서도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서단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내민 적은 없었지만 깊은 학문과 선비정신이 글씨에 자연스레 녹아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특별전은 그의 초서 대가로서의 면모를 조명한 '청명 예술', 금석문과 제발문을 모은 '학예일치', 그가 쓴 한국의 명시와 명문을 모은 '청명 에디션' 등 6개 주제로 구성됐다. 청명이 쓴 지곡서당 현판을 태동고전연구소에서 가져왔고, 김호석 화백이 그리고 청명이 발문을 쓴 성철 스님 진영을 해인사에서 빌려오기도 했다.
엄정한 해서로 쓴 4언시 22구에서 청명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성철 스님의 법어에 '산 밖에 산이 없고, 물 밖에 물이 없네'(山外無山 水外無水)라고 화답했다. 청명이 1988년에 쓴 당나라 회소의 '자서첩'은 길이가 8m에 이르는 대작이다.
서예사학자, 탁본 수집가로서의 면모도 만난다. 1988년 울진 봉평비 발견 당시 현장에서 직접 탁본을 하고 글자를 조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그의 연구혼을 그대로 담은 육필원고 등이다.
특히 현존 광개토왕비 탁본 중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꼽히는 1889년 광서기축본(光緖己丑本)이 오랜만에 전시된다. 청명은 자신이 소장했던 이 광서기축본을 토대로 광개토대왕비문을 연구해 일본의 광개토왕비 위ㆍ변조설을 입증하기도 했다.
청명은 타계 1년 전인 1998년 소장 서화 등 재산을 처분해 청명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청명문화재단은 올해 제4회 임창순상 수상자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선정, 전시 개막일에 시상식을 연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580-166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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