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4월 '과학의 달'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별 다른 감흥이 없는 것은 예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작년 이맘 때에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이라는 나름의 요란한 이벤트라도 있었는데, 불과 1년 밖에 지나지 않아 벌써 약발(?)이 다 떨어졌는지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하여 국제 사회가 뒤숭숭하다. 우리도 첫 자체 발사체를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는 요즈음, 처음부터 논란은 있었지만 기왕의 우주인 이벤트라도 지속적으로 제 몫을 다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거액을 들인 '국비 우주 관광객'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일각의 비판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대중화 운동이 태동하고 '과학의 날' 등의 기념행사가 시작된 것은 생각보다 그 역사가 깊다. 일제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1934년 4월 19일에 시행된 최초의 '과학 데이'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발명학회의 설립자인 김용관(1897~1967)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요업공학 전문가이자 최초의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만이 민족 자립을 이루고 근대화와 산업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1933년에 종합과학잡지인 <과학조선> 을 창간하였고, 민족 진영의 유력 인사들과 함께 과학지식보급회를 결성하여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과학 데이'가 4월 19일로 정해진 것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세상을 떠난 날로 그가 제안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조선>
물론 일제 식민통치 아래 진행된 '과학 데이' 행사와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만큼 일제의 탄압을 피할 수 없었고, 1938년에 김용관이 체포되고 관련 학회와 단체는 해체되거나 친일 단체로 변질됐다. 이에 따라 결국 일제 치하의 과학 대중화 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과학의 날' 4월 21일은 1967년에 과학기술처가 정부 독립 부처로 발족하면서 이를 기념하여 제정했다. 과학사학자나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과학 데이'였던 4월 19일로 '과학의 날'을 옮겨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하기도 하였다. 지난 해 과학기술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폐합되어 다시 독립 부처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러나 마침 올해가 '과학 데이'와 관련이 있는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니, 이런 주장이 다시 탄력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학의 날'이 국민의 무관심 속에 과학기술인들만 모여 심드렁하게 지켜보는 연례 행사로 되풀이된다면, 그날이 언제인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국민 대다수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대중적 관심이 넘쳐흐르고, 과학기술인들이 뿌듯한 자부심과 드높은 긍지로 감격에 겨울 수 있는 진정한 '과학의 날'을 과연 언제쯤 맞을 수 있을까 싶다.
이공계 기피 현상과 과학기술계의 위기의식이 체질화한지 이미 오래됐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 오늘날, 과학의 대중화 운동이나 과학기술 운동은 일제 치하의 민족운동처럼 결연하고 비장한 각오로 매진해야 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오랫동안 그 곳에 몸 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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