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물론 실제가 아닌 가상전쟁에서다. 하지만 미사일과 대포가 오가는 고전적인 전쟁이 아닌 21세기 최초의 '경제전쟁'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17, 18일 이틀 동안 메릴랜드 로렐의 전략분석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주요 경제국들간의 '워 게임'을 실시했다. 존스홉킨스대학 응용물리연구소가 운영하는 이곳에서 경제 전사(戰士)로 참여한 사람들은 헤지펀드 매니저와 교수, UBS와 같은 투자은행 경영진.
이들은 미국, 러시아, 중국, 동아시아, 기타 국가 등 5개 팀으로 나뉘어 21세기 경제판도를 주도할 5개 주요 그룹이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누가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살아남는지를 겨뤘다. 백혈구라는 뜻의 'White Cell' 그룹이 심판을 맡아 각 전사들이 취하는 조치에 대한 임팩트(충격도)를 평가했다.
미 국방부가 상정한 비상상황은 북한의 붕괴, 러시아의 천연가스 시장 조작,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 고조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주요 경제주체들이 '호의적으로 자금 거래를 할 것인지' '상대방을 상황에 개입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방치할 것인지' 등을 파악해 이것이 미국의 경제패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점쳐보는 것이 워 게임의 목적이다.
결과는 중국의 완승이었다. 미국은 이틀동안의 전쟁에서 최대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했지만, 러시아를 견제하는데 지나치게 힘을 소진해 영향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우를 범했다. 중국의 승리는 중국 자체의 경제력 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다투는 통에 얻은 어부지리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이번 워 게임에 참여한 예일대 경영대학원의 폴 브라켄 교수(사모펀드 전문가)는 "미국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얻을 수 있었다"고 인터넷 정치매체인 폴리티코에 밝혔다. 하나는 돈을 놓고 벌이는 금융전쟁과 무력을 사용하는 실제전쟁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경제전쟁에서 자국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규모의 미국 국채를 내다팔지 못할 것이라는 기존 인식에 의문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브라켄 교수는 이란에 대해 미 해군이 봉쇄조치를 취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둘의 통합 관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첫번째 주장의 사례로 꼽았다.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 경제를 공격할 수 있는 방안으로 달러를 내다팔거나 보유하는 것 사이의 "다양한 눈금의" 중간 옵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게임에 참여한 다른 인사는 이를 두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4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이 영국 영화는 피해망상증에 사로 잡힌 미국의 공군 장성이 "소련이 먼저 미국을 공격해 올지 모른다"며 핵 폭격기를 출격시켜 핵전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ㆍMAD)라는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전쟁을 억지한다는 통념에 반기를 든 영화처럼 중국의 미 국채보유도 통념과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워 게임 모니터링에 군 장교와 정보요원들을 대거 동원한 미 국방부는 가상전쟁 실시 자체를 부인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폴리티코는 "단순한 사이파이 픽션이 아니다"며 "9ㆍ11 테러 이후 미국에 대한 다양한 위협을 국방부가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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