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낸 경우 보험금의 20%만 지급하도록 규정한 약관이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 박경호)는 ㈜그린손해보험이 지난해 교통사고로 숨진 A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2003년 6월 A씨는 그린손해보험의 '무배당 다보장 상해보험'에 가입해 월 10만원씩 납입금을 냈다. 일반상해로 사망하면 2,000만원을 지급하고, 교통사고 사망 시 4,000만원을 추가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그 후 A씨는 지난해 10월 22일 강원 홍천군에서 혈중 알코올 농도 0.382%의 만취 상태로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신호등 기둥을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A씨 유족이 사망보험금을 신청하자, 보험사는 지난해 11월 '음주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일으킨 때에는 사망보험금의 20%만 지급한다'는 약관을 들어 보험금을 1,200만원만 지급했다.
이에 유족은 "보험금 감액 약관 자체가 무효"라며 보험금 전액 지급을 요구했고, 보험사 측은 "A씨 유족에게 추가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며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원고는 사망 보험금 6,000만원에 대한 미지급분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법 규정에 따라 사망, 상해에 관한 보험은 고의가 아닌 사고라면 보험금을 줘야 한다"면서 "A씨가 교통사고를 고의로 일으켰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음주운전이 직접적으로 사망이나 상해에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음주운전 자체가 보험계약의 신의성ㆍ윤리성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손해보험사들은 1998년까지 음주ㆍ무면허 사고를 보험금 지급 면책 사유로 규정하고 아예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 대법원이 98년 이 면책 약관이 상법에 맞지 않아 무효라고 판결하자, 20% 가량의 보험금만 지급하는 것으로 약관을 고쳤다.
이후 2005년 손보사들이 음주나 무면허 사고에 대해서도 보험금을 100% 지급하도록 약관을 다시 개정할 때까지 20% 제한 지급 상품이 판매됐다.
이번 판결은 보험금 지급액을 20% 제한하는 약관도 불법이라는 첫 판결로,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같은 시기 비슷한 보험 상품 가입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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