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측 비리 의혹에 대해 거침없이 수사를 진행하는 검찰이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의혹에 대해서는 좀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에 대한 '박연차 구하기' 로비 의혹이 증폭되는데도 관련자 소환을 하지 않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에 대한 수사도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의원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판단의 근거는 "이 의원이 단칼에 거절했다"는 추 전 비서관 진술이 전부다. 이 의원은 물론, 두 사람의 통화를 연결해준 것으로 알려진 이 의원 보좌관 박모씨는 소환 조사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또, 추 전 비서관과 이 의원간 통화횟수가 "1,2회였다"고만 밝혔을 뿐 정확한 통화횟수나 통화시간은 밝히지 않았다.
통화시간은 통화의 내용과 성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 단서다. '단칼에 거절'이라면 상식적으로 통화시간이 짧아야 정상이다. 만일 통화시간이 길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누가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이 의원측이 먼저 걸었던 경우가 있었다면 이는 이 의원측에서 청탁에 대해 검토한 뒤 가부 여부를 통보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구나 이 의원은 "부탁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소환 조사 필요성은 충분하다. 검찰은 추 전 비서관과 통화한 1,000여명을 모두 조사할 수는 없다는 현실론도 내놓았지만 '만사형통'으로 통하는 현 정권 최고 실세를 1,000여명 중 한 명으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지지부진한 천 회장 수사에 대해서도 갈수록 눈총이 늘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최근 "(천 회장 의혹과 관련해)수사팀이 확인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 언론이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차라리 우리에게 제공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천 회장이 현 정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그렇게 핵심 측근이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천 회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한가한 발언들이다.
검찰은 또, 천 회장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진술이나 증거가 없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검찰 스스로 천 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해명이다. 이대로라면 "야당을 겨냥한 편파수사"라는 민주당 주장이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 내부에서"천 회장을 털고 가는 것이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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