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씨는 다를 줄 알았다. 그가 살아온 역정이나 동네아저씨 같은 투박하고 털털한 모습에서 '돈 냄새'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권개입이나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 "낡은 정치의 핵심은 돈이다" 같은 시원시원한 말들도 그럴 듯했다. 젊은 시절 독재와 싸워온 386운동권 세력이 정권을 지탱하는 대들보 역할을 했던 터라 믿음이 더했다.
그들은 이렇듯 '도덕성'과 '청렴'을 무기로 정치ㆍ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때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해 정적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도 "참여정부는 도덕성 측면에서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 깨끗하다"며 당당했다.
그러나 다르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그들 역시 권력의 맛을 본 순간 부패의 수렁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친인척과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돼 수두룩하게 걸려들었고, 이제 노무현씨 부부마저 오욕의 대열에 섰다. "무능한 줄만 알았는데 부패하기까지 했다"는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노무현 정권의 비리를 보면서 시민들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구태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영어의 몸이 된 전두환, 노태우씨, 재임 중 자식들을 비롯해 측근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김영삼, 김대중씨. 돈 냄새가 풀풀 나기는 어느 정권도 예외가 없었다.
권력형 비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것은 그 만큼 우리 정치적 수준이 낮다는 반증이다. 다시 말하면 권력을 장악한 핵심세력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 하려는 집권층과 이를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세력이 있는 한 악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공식에서 보자면 현 정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돌아가는 본새를 보면 과거 정권이 해왔던 궤적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정권이 아직 초창기인데도 추악한 비리 사건들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통해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난 것은 그 신호탄이다. 그가 박씨로부터 세무조사 청탁로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보는 것은 순진하다.
청와대 행정관들이 업자들로부터 룸살롱 접대, 성 로비를 받은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들도 이전 정권의 권력층이 그랬듯 권력을 잡으면 으레 돈과 향응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식의 병폐에 너무나 쉽게 물들었다.
"현 정권은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으므로 당당해야 한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벌써부터 빛을 잃고 있다. '고소영'과 '강부자'로 상징되는 현 정권의 도덕성과 인사검증 시스템 부재는 비리가 잉태할 토양이 더 잘 갖춰진 듯 보인다. 일부에서는 권력 핵심이 부패병ㆍ비리병에 걸려 넘어진다는 '집권 2년차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 저지르는 비리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센 사정기관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악취가 영원이 감춰지지는 않는다. 행여 5년 후 똑 같은 꼴을 보게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차라리 '도덕적인 정권'이라는 허튼 소리나 하지 않았으면 싶다. 시민들은 믿는 도끼에 찍힐 발등이 이제는 더 남아있지 않다.
이충재 부국장 겸 사회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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