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당시 환율로 50억원)가 노 전 대통령의 큰아들 건호(36)씨 쪽으로 흘러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형 건평씨로부터 시작된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관련한 의혹이 조카사위 연씨와 부인 권양숙 여사를 거쳐, 급기야 아들에게까지 번졌다.
건호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해 초 연씨와 함께 베트남 현지 공장을 찾아가 박 회장을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이 만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상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시점상 연씨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투자를 요청하고 송금을 받은 때(지난해 2월)와 맞물린다. 이에 앞서 건호씨는 2007년 말에도 스탠퍼드대 동문들과 함께 박 회장의 베트남 공장을 방문했다. 때문에 그가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박 회장을 찾아간 것이 연씨가 받은 돈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그간 연씨 측은 "박 회장에게 받은 돈을 버진아일랜드의 창업투자사를 통해 투자했다"고 밝혀 왔다. 그 중 200만 달러는 미국ㆍ베트남ㆍ필리핀ㆍ타이 등의 현지 기업 등에 실제 투자됐고 70만 달러는 투자 경비로 쓰였다고 해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회장과 연씨가 만나는 자리에 건호씨가 동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 회장이 그저 대통령의 '조카사위'를 보고 50억원이나 되는 뭉칫돈을 선뜻 건넨 게 아니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돈의 최종 목적지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금융자유도시 홍콩과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를 통해 한국을 우회하는 복잡한 단계를 거치며 자금 추적을 피하려 했다는 의구심도 짙어지고 있다.
검찰 수사는 일단 관련 의혹을 예의주시하며 사실을 차근차근 확인해가는 단계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출입국 기록 등 노건호씨와 관련해 조사된 부분은 없다"면서도 "수사 필요에 따라 (건호씨) 조사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홍콩 APC 계좌 분석이 마무리되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는, 건호씨 관련 의혹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본류'는 아니라는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계좌 분석을 통해 문제의 50억원에 건호씨가 개입돼 있다는 물증이 확보되면 미국에 거주 중인 건호씨를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LG전자 현지법인의 과장으로 재직 중인 건호씨는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9일 회사에 휴가를 내고 휴대전화의 전원도 끈 채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