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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8>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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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8> 별똥별

입력
2009.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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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남진우

그날 밤

내 방 문턱에 지친 고래 한 마리 떠밀려 들어왔을 때

나는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고래는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쿨럭이며 엄청난 물을 마루 위에 쏟아 냈다

입 벌린 고래의 깊은 목구멍 저편에서

누군가 촛불을 켜 들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내 망원경 속으로 떨어져 내린 별똥별 하나

불꽃을 일으키다 타 없어지고

고래 뱃속 낡은 책상에 몸 구부리고 책 읽던 노인은

아무리 불러도 고개를 들지 않더니

책장에 얼굴을 파묻고 졸기 시작했다

망망한 우주의 대양을 떠돌다 풍랑을 만나

그날 밤 내 방 문턱에 밀려온

고래 한 마리

한동안 쉰 다음 힘을 회복한 고래는

꼬리로 벽을 한 차례 힘껏 내리치더니

다시 물기둥을 뿜어내며 창문을 빠져나가

유유히 밤하늘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아득히 멀리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은하계 별 무리 사이를 헤엄쳐 가는 고래가 내쉬는 숨소리였다

내 방은 고래 꼬리에 맞은 벽의 금 간 부분만이

선명한 흔적으로 오래 빛나고 있었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들 말하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찰나의 불꽃 속에서 곧장 떠오르는 소망이라면 참 간절한 것일 테지. 그 간절함이 소원을 이루게 하는 걸 거야. 또 이렇게 상상하면 어떨까. 별똥별이 떨어지면 내 방으로 고래 한 마리 떠밀려 온다고. 고래 뱃속에는 늙은 현인이 우주의 책을 읽고 있다고. 오늘밤엔 내 방도 내 소망도 우주의 책 속에서 읽힌다고.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 남진우

1960년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타오르는 책> 등. 김달진문학상(1998), 대산문학상(2007)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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