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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9> 고요한 오렌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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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9> 고요한 오렌지 빛

입력
2009.04.1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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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오렌지 빛

이근화

말라붙은 우유 자국과 오래된 과자의 눅눅함은 어디로 가는가

당신의 웃음소리와 눈빛은 별의 것이 되어도 좋은가

시간의 주름 속에서 쏟아진 나비 떼가

찐득한 어둠의 내력을 팔랑팔랑 다시 적는다

전쟁 중에는 누구나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고 그랬지

별에 입술을 달아 준다면 평화로운 주문들이 골목길에 쏟아지겠지만

동굴 속 사람들의 첫 기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굴뚝을 통해 별빛과 은혜가 쏟아졌을까

몇 개의 부서진 기둥만으로 신들은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아

여름밤의 더위가 당신의 이마에 금세 몇 개의 땀방울을 만든다

주름을 타고 모호한 주문처럼 흘러내린다

평범한 연인들처럼 나란히 앉아 노을에 물들까

신발 속 해변이 주머니 속 밤하늘이 좀 더 큰 우리를 낳는다

사탕처럼 추억 하나를 오래 빨아먹는다면

아이들은 부드러운 가슴에 별을 지니고

현명한 늙은이는 죽으면 별이 되겠지만

가늘고 긴 유리관 속에서 색색의 모래알들이 흘러내릴 때

서로 다른 의문과 비밀이 잇닿은 곳에서

우리의 심장은 뜨거워지다가 차가워지다가

별에 입술을 달아 '주문'을 시작하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우주는 '조화'를 뜻하는 '코스모스'라 불린다. 옆에 피어난 이웃과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며 서로 성내지 않는 코스모스. 질서 정연한 음표처럼 하늘에 매달려 조화로운 소리를 쏟아내는 별들아, 네 조화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우리는 평화를 배우겠지. 그러곤 사랑하는 이에게도 너 별의 입술로 말을 건네고 싶어 할 거야.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 이근화

1976년 생.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칸트의 동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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