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난민들의 생명을 구해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불이익을 각오하고 내린 결정에 지금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1985년 11월 남중국해에서 작은 나뭇배에 의지해 표류중인 베트남 난민(보트피플) 96명을 구한 전제용(68ㆍ경남 통영시)씨가 13일 국회 인권포럼(대표 황우여)이 시상하는 '올해의 인권상'을 받는다.
전씨는 현재 통영 앞바다에서 멍게 양식장을 경영하면서 자신이 구한 베트남 난민들과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전씨와 이들의 인연은 1985년 11월14일 해질 무렵 남중국해에서 시작됐다.
당시 전씨는 참치잡이 원양어선 400톤급 '광명 87호'선장으로 인도양에서 조업을 마친 뒤 설레임 속에 귀국길에 올라 남중국해를 항해하던 중이었다.
때마침 배 왼쪽 방향에서 파도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작은 점 같은 물체가 발견됐다.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낡은 목선에 탄 10여명의 사람들이 하얀천과 'SOS'가 선명하게 적힌 판자를 필사적으로 흔들며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직감으로 베트남 난민들이 탄 보트라고 판단한 전씨는 곧바로 항해사, 기관장, 갑판장 등 간부 선원들을 불러 긴급회의를 갖고 이들을 모두 구해야겠다는 용단을 내렸다.
당시 망망대해에서 베트남 보트피플을 발견하더라도 무시하고 지나치는 배들이 대부분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해 귀국하더라도 환영은 커녕,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는 등 '고초'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전씨는 "4톤쯤 되는 작은 목선이 파도 속으로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엔진고장에다 낡을 대로 낡아 곧 가라앉을 상황이었어요. 처음엔 10여명정도 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배 밑바닥에서 수십명이 쏟아져 나와 모두 합치니 96명이나 되더라구요"라며 아찔했던 구조 당시를 회상했다.
구조된 베트남인들은 부산 해운대 베트남 난민수용소에 수용됐다.
그러나 '광명 87호' 선원들은 이 일로 당시 안기부 등 관련기관의 조사를 받느라 몇 달간 시달렸으며 전 선장은 결국 2년넘게 배를 타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이후 난민들은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새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베트남군 통역장교 출신으로 난민들의 리더격 이었던 피터 누엔씨(65)를 비롯해 그때 구조된 난민들이 '생명의 은인'인 전씨를 여전히 '캡틴'이라 부르며 직접 한국을 방문하거나 편지, 전자우편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전씨는 "구해준 베트남 난민들이 가식적 인사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편지는 물론, 가족들 사진을 보내 줄때면 오히려 내가 그들을 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전씨는 난민구조에 크게 공헌한 개인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2009년 유엔 '난센상'(Nansen Award) 후보에도 올라 있다.
국회 인권포럼 대표인 황우여 의원은 '전제용 선장 유엔 난센상 수상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씨를 돕고 있다.
1954년 제정된 난센상은 유엔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며 '세계 난민의 날'인 6월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상식이 열린다.
통영=이동렬 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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