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묻혀 있다 잊혀질 뻔했던 우리 문학사의 두 거인의 작품이 햇빛을 봤다. <지리산> 의 소설가 이병주(1921~1992)의 미완성 유작 소설이 책으로 묶여 나오고,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1930~1969)의 미공개 시 두 편이 발굴됐다. 지리산>
■ 이병주 '별이 차가운 밤이면' 사후 17년만에 출간
이병주 장편소설 <별이 차가운 밤이면> (문학의숲 발행)은 고인이 계간 '민족과 문학' 1989년 겨울호부터 1992년 봄호까지 10회 연재했던 작품이다. 별이>
고인은 마지막 한 회분 연재를 남겨놓고 별세, 결국 미완성 유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후 17년이 지나 김윤식(73)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종회(54) 경희대 국문과 교수가 작품을 정리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병주는 일제 시기 와세다대 재학 중 학병으로 징집돼 중국전선에 파견됐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소설을 써 '학병세대' 작가로도 불리는 그의 자의식은, <별이 차가운 밤이면> 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식민지시기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자로서, 해방 후 기묘한 부채감과 싸워야 했던 세대의 고뇌가 녹아있는 것이다. 별이>
주인공 박달세는 양반 피가 섞인 노비 출신의 식민지 청년. 학병으로 끌려가지는 않지만, 중국인 행세를 하며 실제로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이는 상하이 일본군부대의 정보장교인 박달세의 삶이 이병주 특유의 필력과 입심에 실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김윤식 교수는"'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라는 박달세의 절규는 학병 체험이 평생 이병주를 얼마나 강렬하게 따라다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며 "그의 대표작인 <관부연락선> (1972), <지리산> (1985)과 함께 이 소설은 학병세대 3부작이라 할 만하며, 그 기록의 사실성 때문에 역사적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지리산> 관부연락선>
10~11일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는 '역사의 소설화 또는 소설화된 역사'를 주제로 '2009 이병주 문학강연회'가 열리며 극작가 신봉승, 소설가 이문열씨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 신동엽 초기작 '십이행시' 등 40주기 맞아 햇빛
7일은 신동엽 시인의 4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고인의 시 두 편이 새로 발굴됐다. 문예계간지 '미네르바'를 통해 작고 문인들의 희귀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고서수집가 문승묵(53)씨는 1963년 7월 발행된 동인지 '시단(詩壇)' 2집에 실려있던 신동엽의 시 2편을 찾아내 공개했다.
'꽃들의 음악 속/ 말발굽소리 들리면/ 내일 고구려 가는 석공의 주먹아귀/ 막걸리 투가리가 부서질 것이다'로 시작되는 '太陽(태양) 빛나는 蠻地(만지)의 詩(시)' 는 신동엽이 한국전쟁 당시 입산했던 체험을 분단의 아픔이라는 민족적 차원으로 확장시킨 시이다. '몰랐지 아무도/ 무덤가 패랑이// 산 넘고 물 건너/ 예 와 핀 줄'로 이어지는 12행의 짧은 시 '十二行詩(십이행시)'도 당시의 비애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두 편의 시 모두 1963년 3월 출간된 신동엽의 생전 유일한 시집 <아사녀> 는 물론, 이후 출간된 <신동엽 전집> 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신동엽> 아사녀>
신동엽 연구자인 강형철(54) 숭의여대 교수는 "두 편 모두 신동엽 시의 초기 작품으로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했다"며 "전쟁으로 인한 심층적인 상처가 채 다스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극단적인 유미주의에 치우친 경향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신동엽 40주기를 맞아 고향인 충남 부여에서는 11일 추모제를 시작으로 4월 중 시 낭송회와 문학기행, 백일장 등 다채로운 추모행사가 열린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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