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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건축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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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건축가를 위한 변명

입력
2009.04.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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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대로를 따라 한강 변을 지나가다 보면 잠실 부근 허름한 아파트에 '축 안전진단 통과'라는 큼직한 현수막이 걸려 있던 때가 있었다. 언뜻 붕괴 위험이 있었다가 안전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정반대다. 아파트가 금이 가고 흔들려 더 이상 못살게 돼 재건축하게 된 것을 자축하는 것이다. 재건축으로 아파트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열망의 표현이다. 심지어 불합격하면 재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 검사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라 이미지 바꾸는 건축물

몇 해 전 외국 유명 컴퓨터게임회사로부터 게임의 리얼리티를 위해 화면에 서울의 실제 건물 이미지를 써도 되는지에 관한 자문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건물 외관의 이미지를 게임에 실을 경우 상업성이 인정되어,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으면 건축저작물의 저작권침해 가능성이 있지 않나 우려한 것이다. 이 질문을 받고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 건물은 건축저작물로 저작권법상 보호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론상 건축저작물의 저작권침해는 건물 외양을 본떠 건물을 짓거나 설계도를 도용하여 건축하는 경우를 예상하는데 건축과 무관한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건축저작권 침해가 문제된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러고 보니 서구 선진국에서 유명 건축물이나 교량 등을 촬영한 엽서나 사진첩이 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우리의 경우 건축저작물로 보호 받는 것을 넘어 그 전경 사진이 판매될 만한 것이 얼마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해 전 화재를 당해 재단장을 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63 빌딩, 상암 월드컵경기장, 종각역 삼성증권 빌딩 등 헤아리는 데 손가락이 많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2002년 영국 BBC 방송은 자국민을 상대로 영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영국인이 누구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10위 안에 든 인물을 보면 대개 우리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넬슨제독, 존 레넌, 뉴턴, 다윈 같은 위인들이다. 1위는 처칠이었다. 여기까지는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런데 처칠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던 셰익스피어나, 사후에도 영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다이애나 비에 앞설 수 있었을까. 브루넬은 런던 템스 강 터널과 당시로는 희귀한 현수교 등을 건설한 빅토리아 시대의 토목기술자이자 건축가이다.

죄수들이 세운 나라 호주의 이미지를 오페라의 나라로 탈바꿈시킨 것은 작년 말 세상을 뜬 덴마크 건축가 요른 웃존(Jorn Utzon)이 설계한 오페라하우스 덕이 크다. 건축물 하나가 나라의 이미지를 바꾸고 수많은 외국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이에 비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상암동에 '천년의 문'이라는 상징물을 세우자고 제안하였을 때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한강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계획을 내놓았을 때 공통된 반대논리의 하나는 "서울에 결식아동이 얼마나 많은데"였다. 문화는 경제와 환경에 언제나 뒤로 밀리는 존재였다.

건축가 혼이 담긴 건축예술을

최근 서울시가 도시경쟁력 강화차원에서 '공공디자인'개념을 내걸고 서울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정부도 국가경쟁력과 국가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도시미관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국가이미지가 무슨 성적처럼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불타버린 숭례문을 현 대통령 재임 중에 복원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경기부양책으로 재건축요건을 완화해 이곳 저곳에 '축 안전진단 통과'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판에는 더욱 그렇다. 국화빵 찍어내듯 하는 건물보다는 건축가의 혼이 담겨 몇 백년 뒤에도 살아남을 건축예술을 보고 싶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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