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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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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입력
2009.04.1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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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식물동호인모임에서 하얀 앵두씨를 얻었다. 빨간 앵두보다 과육이 크고 달다고 했다. 마당에 심으면서 집에 있는 빨간 앵두나무 씨도 심었다. 봄이 되어 씨가 싹이 텄는데 빨간 앵두와 하얀 앵두는 떡잎부터 달랐다. 빨간 앵두는 떡잎 줄기가 붉고 떡잎과 본잎은 녹황색인데, 하얀 앵두는 줄기 떡잎 본잎이 모두 연두색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떡잎부터 식물을 알아본다는 점에서는 사실이었다. 대신 될성부른 나무가 될 것인가는 어떻게 키우냐에 달렸다는 점에서 속담은 틀렸다.

대통령 정치헌금 수사는 새 역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아내가 받은 것이라고 하니 법적으로는 분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통령이란 자리에서 아내 탓은 비루하다. 게다가 사적인 빚 때문이라는 설명은 안하느니만 못했다. 매년 재산공개에서 늘어나던 자산은 무엇인가.

그러나 노무현씨 가정의 뇌물 수수로 노무현 정부가 유달리 더러웠다거나 심지어는 대통령이 직접 뇌물을 챙긴 노태우 시대로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번 사건이 놀라운 것은 그가 더러운 정치를 끊겠다고 큰소리를 쳤고 재임시 정치자금법이 개정되어 불법정치자금이 최소한 덜하리라 하던 예상이 깨어졌기 때문이지 그 이전 대통령들이 정치자금하고 담을 쌓아서는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공연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막말을 하는 이면에는 정치자금 측면에서 스스로가 더 깨끗하다는 자부심이 담겨있다. 반면 김대중씨의 측근들은 '김대중 대통령은 적어도 통치자금을 모으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자부한다. 대기업으로부터 공공연히 통치자금을 요구한 전두환 노태우 시절 같지는 않지만 후원자 집단의 정치헌금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존재했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은 검찰이 대통령 후원자들의 은밀한 정치헌금조차 불법적이라면 밝히는 시대가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단초는 개정된 정치자금법 뿐 아니라 정치적인 사건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검찰을 비판해온 노무현씨의 태도가 제공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정권이 확실히 교체된 데 가장 큰 요인이 있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든 이제 정치판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은 없는 시대가 열렸다. 아니 열려야 한다.

그러려면 조사를 하는 검찰이나 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나 진실해야 한다. 우선 노무현씨는 사과문에서 뭐라고 말했던, 과거의 말을 뒤집는 것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이제부터 모든 것을 국민 앞에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이것은 그를 지지해온 계층은 물론 그를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노무현 정부가 지키려고 한 이상적인 가치관을 지지해온 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검찰은 전직의 죄를 밝히는 데만 추상 같은 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직 대통령까지 문제삼는 것은 권력을 빌미로 이뤄지는 불법적인 일을 바로잡자는 뜻이다. 그러나 권력은 전직에 있지 않고 현직에 있다. 박연차씨는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현 정부에 줄을 대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작년 9월에 현정부의 홍보기획비서관이던 추부길씨한테 2억원을 준 것은 그 때문이다. 검사들도 만나고 다녔다. 그런데 당시 국세청장인 한상률씨는 돌연 외국으로 출국했고 검찰 관련 수사는 전혀 고려대상도 아니라고 한다.

현직 수사 더 엄정해야

시간은 앞으로 간다. 싹튼 앵두는 씨로 돌아가지 않으며 깨어난 국민의식은 되돌릴 수 없다. 노무현씨의 수사는 성역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될성부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거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현직과 스스로를 검증하는 것은 외면한다면 스스로 싹틔운 떡잎을 짓밟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을 비난함으로써 그 시절에 이뤄진 바람직한 정책들을 모두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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