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運七技三)은 일의 성패를 가르는 데서 노력이나 재주보다는 운수가 더 많이 작용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홍동백서'는 '좌포우해' 등과 함께 제사음식을 진설할 때 쓰는 말이다. 식도락가들의 4자 성어에는 '좌광우도'가 있다.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광어(넙치)는 눈이 왼쪽에, 도다리나 가자미는 오른쪽에 있으니 구별하라는 뜻이다.
봄철에는 도다리 쑥국이 제격이라는 어머니 말씀이 떨어지면 우리 남매들의 주말은 바빠진다. 부지런한 자식이 새벽 수산시장에 가서 싱싱한 놈으로 골라 오고, 남은 가족들은 차 한 대로 오라는 엄명을 받들어 다른 남매 네에 들러 온다.
인터넷에서 알아본 조리법에는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거기에 싱싱한 도다리와 어린 쑥을 넣어 끓이다가 소금 간을 약하게 한다고 간단히 나오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어머니의 지휘가 필요하다. 된장을 어느 정도로 풀어야 할지, 쑥은 어느 단계에 넣어야 할지, 그때그때 판단을 내려주신다.
다들 한바탕 나름대로 부산을 떤 뒤라 식욕은 하늘을 찌른다. 이른 아침에 족발도 삶아 먹고 해신탕도 끓여 먹는다. 지난 겨울에 먹었던 매생이국도, 가을의 숯불 전어구이도, 여름의 삼계탕도 혀가 기억한다.
몇 년간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맛 따라 엄마 집으로' 가족모임이 회를 거듭하면서 체계가 잡혀가고 있다.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그 간격이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한 철이건 상관없이 매우 빨리 돌아오는 느낌을 준다. 지난해부터는 2주 간격이 되었는데, 그 때가 가까워지면 뱃속에서 "주인님, 맛있는 거 먹고자파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동생이 너스레를 떤다.
우리는 엄마 앞에서는 아이다. 재택근무자라 외식의 기회가 별로 없는 작은 애도 있고, 초등학생들에게 영어학습을 시키느라 진이 빠지거나 혹은 아이를 웬만큼 키워놓고 이제는 경력개발을 다시 시작하기에 응원이 필요한 며늘아기들도 있다. 재수생을 가르치면서 함께 청춘을 불사르는 막내와, 태평양 건너 유학하는 자녀를 두고 환율 때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 큰애도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애쓰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든 자식들에게 영혼의 음식이 공급된다. 영혼은 시ㆍ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테니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영혼의 음식 에너지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기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된다. 턱 관절이 약해져 씹는 게 시원찮아도 어머니는 '맛있다' 하시며 잘 드신다. 우리는 함께 이러쿵저러쿵 음식 품평을 하면서 다음 메뉴를 추천하고 선정하느라 골몰한다.
사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 구절이나 "우리 어머니는 외식을 싫다고 하셔"라는 말은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방송 채널마다 맛난 음식 정보들이 철철 넘치는데 왜 어디 가서 드시고 싶은 게 없을까 만은 자식들 사정을 헤아리시고 모아 들이는 것이다. 돌아가면 각자 제 가정 끌어가기에 여념이 없어도 우리가 가족으로 남을 수 있는 비결은 음식 나누기에 있는 것 같다.
'운칠기삼'은 열심히 일하고 일상에 정성을 바치는 사람에게서 신명을 뺏어갈 수 있는 말이다. 그 대신에 '음식칠기삼' 즉, 음식이 7할이고 노력과 재능은 3할이라고 생각하면서 구성원을 잘 먹일 때 모듬살이의 바탕이 탄탄해지는 것이 아닐까. 일한 만큼 먹을 권리를 주는 냉정한 규칙이 아니라, 일단 먹이고 기운 차려서 일하게 만드는 지혜가 있는 곳이 한 수 위의 사회다.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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