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집을 노숙자 같은 외모의 한 여자가 무단 점거한다. 집주인의 온 몸을 묶고선 짝사랑하는 남자의 집을 24시간 감시하는 이 여자 이수강.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사랑하는 연하남을 끔찍하게 쫓아다니다가 쌓인 전과만 3개다.
그래도 운명적인 사랑을 위해선 납치와 살인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근거없이 당당하고 거침없이 저돌적인 이 여자에게 자살 중독자인 집주인 병희(박희순)와의 3주 간의 동거가 뭐 별스러운 일일까.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9일 개봉ㆍ15세 관람가)의 주인공 이수강은 사회성 전무한, 사랑에만 모든 것을 거는 외계인 같은 외모와 성격의 소유자. 과연 한국 여자배우 중 안드로메다에서나 통할 듯한 이 역할을 소화해낼 배우는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많은 영화 팬들은 그 얼마 안 되는 후보 중에서 개성 만점의 연기파 강혜정(27)을 1순위로 꼽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수아 감독의 데뷔작인 '우리 집에 왜 왔니'는 강혜정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를 밑바탕 삼았다. 식칼과 돌덩어리로 캔을 따고, 쇼핑카트를 여행가방처럼 활용하는 이 엉뚱한, 4차원스러운 이수강 역에 대해 강혜정의 주변 사람들은 "바로 딱 너"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강혜정은 "왜 이게 나지?"라고 의문을 품었다고.
"다들 '평소의 너대로 하면 된다'고 말을 했을 때 저는 큰 의문이 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비슷하다는 명확한 말도 없으니 저는 오히려 수강에게서 괴리감을 더 크게 느꼈어요."
강혜정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막막했다"고도 했다. "연기하는 자아와 일상의 자아는 다르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데 둘이 똑같다는 말을 듣고 연기를 하려니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겹의 넝마를 껴입고 떡진 머리의 행색을 갖추면서 수강이 나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어렵게 소통한 수강은 강혜정의 몸을 빌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할 만한 여인에서 아주 가끔은 현실에서도 만날지 모르는 지극히 독특한 캐릭터로 스크린에 현현한다.
'우리 집에 왜 왔니'는 2007년 '허브' 이후 강혜정의 2년 만의 충무로 복귀작이다. 그동안 "개봉한 작품이 없어서 공교롭게도 노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그는 2년 동안 여러 작품을 해왔다.
자신의 살인을 의뢰받은 킬러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연기한 '킬 미'와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촬영했고, TV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에도 출연했다. "관객들 앞에 서려니 조금은 막막하고 어색해요. 예전엔 노련하게 잘 했던 듯한데… 카메라 플래시 앞에 서니 '오랜만이긴 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1998년 TV드라마 '은실이'로 데뷔한 지 11년. 열여섯 나이에 연기에 입문한 조숙한 이 배우는 학업 대신 연기로 보낸 20대 초반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했던 연기에 대해 좋은 기억이 많아요. 특히 '은실이'는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촬영장이 항상 자상하고 화목하면서도 위엄있는 분위기였어요. 예의와 책임감을 피부로 배웠고 연기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도 생겼어요. 만약 '은실이'에 출연 안 했으면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진 않을 거예요."
강혜정의 차기작도 역시나 그답다. 재미동포 감독 크리스틴 유의 한미 합작영화 '웨딩 팰리스'에서 그는 키가 무척 작으나 자신감만은 키다리인 커리어 우먼을 연기한다.
"30세 이전에 결혼 못하면 영영 총각으로 살아야 되는 운명의 남자와 사랑을 하는 내용이죠. 제 키가 대략 145㎝ 정도로 나오는데요, 무릎으로 걸어 다니며 촬영 중입니다. 많이 엉뚱하죠?"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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