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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7>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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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7> 별

입력
2009.04.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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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이정록

언제 처음 별을 보았나?

젖배 곯던 우멍눈으로 보았나?

불장난하다 외양간 태운 날

쫓겨나 개구리 울음주머니에 비친 별빛을 보았나?

그을린 암소 울음에 잠 못 이루다 보았나?

눈물 머금은 별은 술빵처럼 부풀어 올랐지

그렁그렁 멀건 미음 솔아 있는 별

밀짚 방석에 누워 거미줄로 별자리를 나누곤 했지

거미 뱃속에다 아기별을 키우며

별의 목젖에 박꽃 한 다발씩 물려 주고 싶었지

들일 마치고 오다가 수수 이삭으로 은하수를 쓸어 담았지

한 자루 긁어모아 은행에다 적금을 붓고 싶었지

별자리 하나 골라 새 이름표를 붙여 오란 숙제에

지구별에다 우리 집 문패를 달았지 그러면

과수원도 양조장도 장터 국밥집도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었지

겨울밤 마루 끝에 서서 오줌 누다가

까치밥 쪼아 먹는 거지별도 보았지

첫사랑이 찾아온 뒤에야 나는 알았지

사랑에 빠진 세상 모든 눈망울들이 별을 닦는다는 것을

까치밥 붉은 볼이 별이 되어 반짝이는 까닭을

아! 나는 언제 별의 눈을 닫아 버렸나?

별 볼 일 없어지자 마음은 매미똥처럼 깜깜해졌지

하늘 경전도 통째로 문을 걸어 잠갔지

별과 함께 한 세계가 생겨난다. 별을 머리에 인 저녁 산이 둘러쳐지고 마을이 들어선다. 길은 흘러내린 은하수 한 자락처럼 환히 빛나며 등성이를 넘어가고, 사람들은 경작하고 휴식하며 또 별이 가득 담긴 사랑하는 이의 눈망울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탁, 스위치가 켜진다. 밤이 없는 도시가 세워지고 아이는 몸이 아픈 중년이 되어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하늘은 흔들리는 촛불이 가득한 그의 아름다운 책을 영영 닫아버린다.

서동욱(시인·서강대 철학과 교수)

■ 이정록

1964년 생.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제비꽃 여인숙> 등. 김수영문학상(2001), 김달진문학상(200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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