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신문을 읽다가 문득 '니니시즘'이란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 말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는 프랑스어의 '니니(ni-ni)'로 만든 조어로서, 지금 우리 국민들은 이런 상태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상태에 빠졌다는 건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지수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회통합지수는 가족, 주거, 소득, 교육, 건강, 고용, 가계 금융 등 7개 영역의 반응을 분석한 지수로 0을 기준으로 플러스일 때는 통합, 마이너스일 때는 갈등 사회로 분류하는데, 금년도 상반기는 경기 악화로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았던 2003년도의 -0.45에서 -0.5 사이를 오갈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화득화득 제 몸을 여는 뜨락의 목련을 내다보며 이러다가 우리 사회가 폭싹 주저앉는 게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어려울 때일 수록 단합해야 하는데, 수출 위주의 국가에 세계 경제는 붕괴 직전이고, 북에서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겠다고 엄포 놓고, 미·일은 요격하겠다고 군함을 띄우고, '박연차 회장 사건'은 전직 대통령에게까지 번지고, 전교조 선생님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하겠다고 학부형들의 서명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원인이 뭔가 곰곰이 생각해봤지요. 사람들은 흔히 경제 때문이라지만, 지금보다 더 어렵던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정치인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국민들도 뻔히 아는 옳고 그름을 덮어두고 상대에게 반대함으로써 자기 존재성을 확보하려는 게 오늘의 정치인들이니까요.
그러다가 우리 교육과 학문이 잘못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소리를 하기 마련이지만, 전체 구성원들에게 널리 통하는 가치기준이 없다는 건 우리 의식구조가 그렇고, 그렇게 만든 건 학문과 교육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제 이야기가 지엽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기 책꽂이를 살펴보십시오. 학문적인 서적일수록 서구 이론을 소개하고, 각주(脚註)마다 서구 학자들 이름이 꼬리를 물고 있을 겁니다. 제 책꽂이의 책과 제가 쓴 책, 제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강의가 그런 대로 인기 있는 것도 서구 학자들의 이름을 잘 주워섬기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회통합지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구요? 전 사회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니니까, 제 분야인 문학을 가지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구에서는 예로부터 극을 최고로, 서사를 그 다음으로 꼽아왔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극은 광대의 장르로, 소설은 소인지배의 장르로 꼽고, 시와 문(수필)을 최고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저들의 이론에 따라 가르치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나 비평가들이 꼽는 작품과 독자들이 꼽는 작품이 다르고, 같은 교수나 비평가도 논리적으로 읽을 때와 감각적으로 읽을 때가 다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니니시즘에 빠져 갈등을 빚는 것은 개화 이후 가르친 문학을 비롯한 모든 논리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전통적 감각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려면,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먼저 우리 학문을 만들어내고, 그를 가르쳐 표준적 가치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사회는 이에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尹石山 시인·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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