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파우더 석면 검출 파동과 관련해 드러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행태는 문제가 터질 때까지 묵히고 무시하다, 정작 사고가 생기면 전광석화처럼 졸속으로 처리하는 ‘참 나쁜 행정’의 진수(眞髓)를 보는 듯하다.
식약청이 베이비파우더 검사에 착수한 경위만 봐도, 정상적인 행정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는 ‘선제적 대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식약청은 지난달 30일 한 방송사가 자체 검사의뢰 결과를 근거로 취재를 요청하자, 그제서야 검사에 착수했다.
식약청은 이 방송사가 1일 저녁 이를 보도하려 하자, 이날 오후 허겁지겁 ‘베이비파우더 석면 검출’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방송사의 취재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유아들이 석면을 마셔야 했을지 알 수 없었던 노릇이다.
대부분의 나쁜 행정이 그렇듯, 늑장대응은 졸속처리를 부르는 법. 식약청은 발표 하루만인 2일 ‘베이비파우더와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탈크’에서 석면이 검출돼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의약품 등의 기준을 바꿀 경우 통상 이해 당사자의 여론을 수렴하고 시간도 주기위해 입법예고와 규제심사 등을 거쳐 고시를 개정하지만, 이런 절차도 건너뛰었다.
대신 법에 근거는 있지만, 한번도 사용해 본적도 없는 ‘원료규격 기준 통지’라는 형식으로 관련 업체에 기준변경을 통보했다. 업체들 가운데는 당장 원료 도입선을 바꾸고, 새 장비를 들이지 않으면 제품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곳들도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럽의 보건당국은 수년간의 논의를 거쳐 2005년에 탈크 기준을 마련했다. 식약청이 해외 동향만 잘 챙겼어도 지난 4년 여 동안 우리 아기들이 석면을 마시지 않아도 됐던 셈이다.
그것도 4일만에 처리할 것을 4년이나 방치한 것이다. ‘못해서 안 한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한’ 참 나쁜 행정의 전형을 식약청이 이번에 제대로 보여줬다.
유병률 사회부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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