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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팔로어십, 신뢰의 리더십] <4> 노사문제, 자율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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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팔로어십, 신뢰의 리더십] <4> 노사문제, 자율이 먼저다

입력
2009.04.0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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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노사 갈등 이슈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매년 춘투(春鬪)에서 하투(夏鬪)로 이어지는 임금협상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국내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가 입는 손실이 막대하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는 대신, 건설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노사는 아직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경영인들은 노동자의 팔로어십(followership) 부재(不在)를 탓하고,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리더십(leadership)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갈등의 책임이 노ㆍ사 어느 한쪽에만 있을 수 없듯, 그 해결책도 양자가 더불어 모색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완전히 바닥난 노사간 '신뢰'가 회복돼야 노동자들의 팔로어십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결국 해결의 열쇠는 신뢰 회복을 가능케 할 경영자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신뢰회복 방법은 '소통'뿐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국내 몇몇 기업의 사례는 우리 노사문화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농심 노동조합은 지난달 31일 임금협약을 무교섭으로 회사에 위임했다. 1996년에 이어 두 번째다. 웅진케미칼 노조는 1일 임금을 자발적으로 동결하고 단체협약을 회사에 위임하는 '노사 한마음 선포식'을 가졌다. 최근 노동부로부터 노사협력 우수사례로 선정된 행남자기와 포스코특수강도 임금 동결과 고용 유지를 골자로 한 자발적 합의에 성공했다.

노조가 임금문제를 회사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것은 양자 간 두터운 신뢰가 쌓여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송영수 한양대 리더십센터장은 "신뢰관계는 엄청난 '소통의 시간'이 바탕에 있어야 구축될 수 있다"면서 "이는 직원들을 '혁신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의 주체'로 보는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직원들의 팔로어십을 끌어내기 위해 리더(CEO)가 직접 현장직원까지 만나 소통하고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질 중시 신경영 선언'을 한 뒤 약 두 달간 전국 공장을 돌며 직접 직원교육에 나섰던 일이나, 외환위기 이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내가 품질본부장"이라고 강조하며 협력업체까지 직접 챙긴 사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자율적 노사합의에 이른 기업들의 CEO도 공통적으로 직원과의 소통에 아낌없는 시간을 쏟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기업 내 끝장토론이 혁신 불러

소통을 통한 직원들의 건강한 팔로어십 육성은 비단 노사 갈등 극복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의적 소통 문화는 직원들을 일개 '종업원'에서 회사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는 특히 위기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다.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는 창의적 소통의 중요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잭 웰치 회장은 제너럴일렉트릭(GE)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비결로 '워크아웃 타운미팅'을 꼽는다. 직원들이 크로톤빌 연수원에 모여 상사가 없는 상태에서 대학교수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이 느낀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에 대해 2~3일 간 이른바 '끝장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직원들은 상사에게 새 제안을 하고, 상사는 그 자리에서 채택 여부를 밝히는 식이다. 이는 GE 직원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었고, 직원 모두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키워주었다는 게 웰치 회장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특허가 가장 많은 회사인 IBM은 전세계 15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수만 건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토론하는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이라는 온라인 컨퍼런스를 열고 있으며, 전자업계에서 연구ㆍ개발(R&D)를 가장 잘 한다는 일본 캐논은 팀원들이 정제되지 않은 말이라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왁자지껄 미팅'제도를 운영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는 1년에 두 번씩 전 직원들이 빌 게이츠 회장에게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생각주간(Think week)'이 있다.

자율이 우선이다

결론적으로 노사 갈등은 '신뢰'의 문제이고, 이는 양자간 소통을 통해서만 조정될 수 있다. 이를 전제한다면 정부가 어느 한쪽 편을 들고 노사문제에 섣부르게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제3자의 개입은 양자간 소통 가능성을 차단해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사간 자율적 대안 마련을 최대한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박사는 "198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민간 노사협의기구인 '노동재단'이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대안을 발의해 90년대 '네덜란드 기적'의 초석이 되는 바세나르협약 체결을 주도했다"면서 "정부는 민간 차원의 자율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 손욱 농심 회장 인터뷰

'한국의 잭 웰치', '6시그마 전도사', '최고의 테크노 CEO'…. 손 욱(64ㆍ사진) 농심 회장의 별명이다. 그는 1975년 평사원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래 30년 넘게 근무하며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2년째 학계와 재계의 유수 인사들과 함께 '한국형 리더십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한국 사람들은 자질이 뛰어나지만 개성도 강해 웬만한 리더십으로는 팔로어십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면서 "한국형 리더십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국적, 다인종이 모인 미국의 '하향식(Top-down)' 리더십이나 일본의 '상향식(Bottom-up)' 리더십은 모두 한국에 맞지 않다"며 "우리 역사 속에서 한국형 리더십을 찾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회장이 가장 모범으로 삼는 사례는 바로 조선 세종의 리더십. 그는 모든 조직에서 참고해야 할 세종의 리더십을 '삼통(三通)'으로 요약했다.

첫째는 지통(志通), 뜻이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지도자를 비롯해 리더들은 종종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한 나머지 '내 뜻이 곧 우리 뜻'인 줄 착각한다"면서 "자기 뜻을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언통(言通)으로 말이 통해야 한다는 것. 원래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말 자체는 크게 중요치 않았으나, 최근 사회가 다양화하고 세대간 격차가 심해지면서 모든 구성원이 오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설명이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마지막은 심통(心通)으로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것. 손 회장은 "세종의 모든 업적은 '백성 사랑'에서 시작했다"면서 "특히 우리 민족은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몸이 움직이므로 구성원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농심 직원들이 최근 자발적으로 임금협약을 회사에 위임한 것 역시 세종 리더십에 기반해 소통에 힘쓴 결과라고 설명했다. 손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경영자가 자기 리더십에 대해 겸손하고 회사 상황에 대해 투명하게 얘기하면 직원들의 참여의식은 절로 따라온다"며 "평상시 독서경영(학습), 제안제도(참여), 칭찬운동(재미) 등을 통해 꾸준히 신뢰관계를 쌓아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성노조 문제도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리더가 먼저 경청하는 것에서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며 "리더까지 함께 노조를 적대시하거나 회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우리나라 정치 리더십과 관련, "위기를 맞아 정치 지도자들이 단기간에 무엇을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며 "세부적인 목표보다는 큰 방향을 제시하고 5,000만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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