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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시를 위한 에세이'/ 名詩들 감상 적은 '서정적 풍경…' 딸은 삽화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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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시를 위한 에세이'/ 名詩들 감상 적은 '서정적 풍경…' 딸은 삽화 그려

입력
2009.04.07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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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도 출신의 소설가, 영어 공용어론자, 진화생물학을 신봉하는 우파 사회비평가. 복거일(63)씨의 이름을 장식하는 수식어는 다채롭다. 그러나 <오장원의 가을> 같은 시집을 눈여겨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혹은 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 의 곳곳에 숨겨진 하이쿠의 명구절들을 음미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의 남다른 시인적 감수성도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에두르지 않은 제목 그대로 그는 신작 에세이집 <서정적 풍경,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 (북마크 발행)에서 예민한 감수성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인생살이에 대한 유정한 소회를 풀어간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시읽기를 통해 이뤄진다.

당나라 시인 육유, 일본의 하이쿠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 <율리시즈> 와 키츠, 한국의 이용악 윤동주 서정주 정현종의 시를 아우르며 부부간의 사랑, 노년의 쓸쓸함, 사친(思親)의 애틋함, 계절의 무상함 등을 이야기하는 그의 단정한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젖어들게 한다.

외지에서 횡사한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종기 시인의 시 '묘지에서'를 읽고 난 그는 "힘들게 삭혀진 분노와 슬픔이 거름이 되어, 담백한 빛깔의 꽃송이가 문득 피었다"고 적고 있으며, 사과나무 과수원을 걸으며 떠올린 첫사랑이 소재인 시마자키 토오손의 '첫사랑'을 소개하면서는 "어릴 적 첫사랑이 평생의 인연으로 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첫사랑은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평생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쓴다.

가을날의 애상을 노래한 황동규의 초기작 '시월'을 읊다가 "세월이 가면, 파릇함은 가시고 그 자리를 다른 특질들이 차지한다. 아쉽다. 원숙함이 대신한 경우에도 아쉽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고 자신에게 일러도, 역시 아쉽다"고 토로하는 대목에서는 슬그머니 눈가를 훔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내세워 맹목적인 반공주의를 비호하거나, 10년 진보정권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몇 편의 글은 서정적 에세이집의 전체적 분위기를 흩뜨리는 흠결로 느껴진다.

그러나 지은이의 딸 조이스 진이 그린,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 풍의 그림들과 잘 어우러지는 일급의 문장은 그 흠결을 덮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책 머리에 "독자들이 수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음미할 기회가 나오도록 마음을 썼다. 수필에서 가벼운 얘기를 듣고 시에서 그 얘기의 보편성을 느끼고 그림에 명상의 눈길이 머문 독자가 더러 있다면, 나로선 큰 행운일 터이다"라고 적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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