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창조자들' 예외적 천재들의 '천지 재창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창조자들' 예외적 천재들의 '천지 재창조'

입력
2009.04.07 00:56
0 0

/폴 존슨 지음ㆍ이창신 옮김/황금가지 발행ㆍ500쪽ㆍ1만9,000원

"베토벤은 피아노 줄이 떨어지고 건반이 망가지고, 쓰레기와 먼지 구덩이 생활에 가난까지 덮치는 대혼란 속에서도 잃어버린 청력과 싸우며 현악 4중주 130번, 131번, 135번을 완성하는 놀라운 드라마를 연출했다."(27쪽) 귀가 먹은 악성(樂聖)을 만든 것은 그 무엇도 제어할 수 없는 창조력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시대정신일까, 혹은 창조적 소수일까. 결코 끝나지 않을 해묵은 논쟁에서 영국의 역사가 폴 존슨(81)은 천재성의 손을 들어준다. 순수 예술에서 상품까지, 그가 손꼽은 '창조자'들의 범위는 넓은 의미에서 예술의 영역을 포괄한다.

가난한 처자 오드리 헵번의 꿈을 그린 영화 '티파니의 아침'. 초고가의 장식품을 상징하는 브랜드 티파니를 창시한 루이스 티파니는 예슬품에 대한 일반의 욕망을 상품과 절묘하게 결합시켜 새로운 가치로 연결했다는 의미에서 창조자이다. 그는 미국의 신흥 부유층을 상대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유럽의 미술 공예를 소개한다는 계획을 밀고 간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사치품 판매로 얻은 수익을 재투자해 작업장을 만들고 미국의 장인을 고용해 훈련시킨 사업가였다.

창조성이 체제와 공존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시의 문을 연 시인 T S 엘리어트는 철저히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했으며, 여러 면에서 극우적이기까지 했다. 저자는 그가 평생 총각 딱지를 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한다. 정신장애를 앓던 첫 아내와는 물론, 어머니의 품을 발견하고 행복을 얻었던 둘째 아내를 맞았을 때는 벌써 그의 나이 60대 후반이었을뿐더러 사창가를 찾기에는 억업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든다.

14세기의 위대한 시인 초서부터 20세기의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에 혁명을 일으킨 피카소와 디즈니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17명의 '예외적 천재들'의 핵심을 밝혀낸다. 셰익스피어에게 '언어의 은행'을 선사한 제프리 초서, 천재성에다 근면과 모험심을 구비한 16세기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영국이 인도 땅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 고도의 창조적 재능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웅변한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사회적 편견에다 불치병을 안고도 <오만과 편견> 등 불후의 작품을 남긴 여성 소설가 제인 오스틴 등의 창조성은 인간 고유의 가치를 보여주기에 족하다.

그것을 입증하는 이 책의 미덕은 섣불리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사실에서 접근해 가는 방식에 있다. 당대의 첨단 유행을 제조해낸 티파니에 대해 서술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고대의 유리 불기 기술'부터 상세히 설명, 독자들에게 잘 씌어진 과학책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또 셰익스피어 등 대문호를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풍성한 예문들을 제시, 정선된 문선집이 부럽지 않다.

저자 폴 존슨은 국내에도 번역된 <지식인의 두 얼굴> <모던 타임스> 등 인문, 종교, 예술 분야에서 40여 권의 두툼한 책을 펴낸 영국 역사가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 대처 전 영국 수상의 고문이자 연설문 작성자로 현실에 깊숙이 발을 들인 인물이다. 이 책은 아직 신화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21세기 사람들을 향해 그가 띄우는 천재론이다. 우아하고도 정교한 산문, 영국적 인문주의의 전통을 고스란히 잇고 있는 박람강기는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이 시대에도 왜 건재해야 하는지를, 왜 보존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장병욱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