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죽어가는 풀/ 한 포기 주워 조심스레 갖고 돌아와/ 화분에 꽂았더니 뿌리 뻗고 잎 돋아/ 한 분홍 피워 올렸는데 어느 날/ 분갈이하느라 엎어본 아랫도리에/ 한 마리 살찐 지렁이 똬리 틀고 있었다// 내가 아침마다 주는 투명한 물의 적선/ 만 가지고는 아무 일도 일으킬 수 없던 모양이다/ 가령 기적 같은 것' (김윤희 시 '지렁이' 전문)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울 망정/ 불의로 얻는 영달 허황한 뜬구름/ 마지막 가는 길에는 누구나 빈 손인걸// 우리의 선인들은 공부해 벼슬해도/ 청백리로 산 것을 영예로 알았었네/ 오늘은 투기꾼들이 나라를 틀어쥐나/ (구중서 시조 '빈손' 전문)
부부 문인인 문학평론가 구중서(73), 시인 김윤희(70)씨가 각각 시조집 <불면의 좋은시간> , 시집 <성자 멸치> (책만드는집 발행)를 펴냈다. 김씨의 다섯번째 시집인 <성자 멸치> 에는 섬세한 감수성과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의 사랑을 발견하고 노래한 50여 편의 시가 실렸다. 성자> 성자> 불면의>
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젖을 물린 중국의 여경, 지하철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서슴없이 뛰어든 시민 등이 찬란한 시로 다시 태어났다. 리얼리즘 비평가인 구씨가 시조집을 내기는 처음이다.
최근 고 김수환 추기경 평전을 내기도 한 그는 "허무주의와 말초적 감각이 주류인 우리 시의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틈틈이 써온 시조들을 묶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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