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글쓰는 일이다 보니 그에 관련한 책읽기에 관한 질문을 꽤 많이 받는다. 어린이들의 독서에 관해서는 물론,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며 자주 읽는지 등의 질문이다. 그때마다 난감한 것이 내 경우, 글 쓰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틈틈이 집 안 일을 거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청탁받은 원고를 마감 전에 써 보내는 일부터 그밖에 소소한 일들로 책 읽는 시간을 따로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내 경우 책읽기나 글쓰기보다는 다리미, 손빨래, 집안 정리, 음식 만들기, 그밖에 잡다한 일에 정신을 파는 편으로 책 읽는 시간을 내기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덜한 딱딱한 책이나 장편의 경우 더구나 손에 들게 되지 않아 스스로 돌이켜 보아도 한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자투리 시간 또는 육신을 가만히 놓아두어도 상관없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필히 읽어야만 할 책이나 흔치 않은 일로 꼭 읽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면 새벽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읽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열 두어 페이지 가량을 맛보기로 읽어두는데 그렇게 하면 대체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언제라도 시간이 날 때 다시 떠들쳐 보게 된다. 굳이 새벽부터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놓는 까닭은 부엌일이나 다리미 등에 잔재미를 붙여 그 일을 오후 무렵까지 붙잡고 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다른 일에는 부지런한 편이되 책읽는 일에는 유독 게으름을 피운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맑고 상쾌한 이른 새벽, 잘디잔 글자들이 빽빽이 들어찬 책 따위에 코를 박고 있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지 싶을 때가 많다. 이따금 기차 여행을 하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여서 산에서 들로, 개울로, 강으로, 구부러진 오솔길로 바뀌는 이름답기 그지없는 풍경을 두고서 책장에 눈을 박고 있기란 편안할 일이 아니다. 경치는 바뀌며 이내 사라지고 말지만 손에 들린 책은 그대로이지 아니한가. 언제라도 마음만 내키면 읽을 수 있지 아니한가. 그러면서 보낸 나의 한평생!(단번에 할 수 없는 일 중 한 가지가 책읽기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단 한 곳, 유일하게도 마음 편히 책 읽는 일에 몰두할 곳이 있으니 다리미도 손빨래도 양파 피클도 만들 수 없는 지하철이다. 맥없이 앞 사람을 마주 바라보기도 멋쩍고 그렇다고 좌석 앞에 선 사람의 바지 주름이 똑바른지 삐뚤었는지 눈여기기도 그렇고...
나의 책읽기는 지하철에서 비롯되어 마무리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어떤 책을 들고 나가지?"
집을 나서기 전, 가방에 읽을 책을 골라 넣는 재미도 실은 쏠쏠한 편에 속한다.
이상교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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