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 재선거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 갈등이 일단은 소강국면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그럴 뿐 속으로는 휴화산을 덮어둔 듯한 분위기다.
박근혜 전 대표가 1일 "우리 정치의 수치"라는 작심 발언을 한 뒤 양측은 모두 추가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친이 주류 측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최대한 반응을 자제했다.
이 의원은 2일 경북지역 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사퇴 권유는 없었음을 거듭 강조하며 "선거 때는 뭐라도 잡으려 하는 것이니 (정수성 후보를) 이해할 측면도 있다. 이제 잊어버리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 측 의원들도 상황을 지켜 보는 분위기다. 양측 모두 정면 충돌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 지도부도 더 이상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박희태 대표는 불교방송 라디오에서 "당이 무소속 후보에게 사퇴하라고 할 수도 없다"며 "여론조사를 해 보니 그렇게 할 대상도 아니었다"고 일축하며 수습에 애썼다.
안경률 사무총장도 KBS 라디오에서 "정수성 후보가 정치 선배의 정치적 언어나 수사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것 아닌가, 서로 오해에서 불씨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갈등이 진정되는 기류다.
하지만 속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불씨는 여전하다. 친이 측은 이번 사태를 두고 '이 의원이 정 후보에게 당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한 친이 의원은 "정 후보가 박 전 대표를 선거에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벌인 일 아니냐"며 "정 후보의 이번 행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고 흥분했다.
다른 친이 의원은 "박 전 대표도 사실관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정적 발언을 한 측면이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사실상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는 언급을 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반대로 친박 측은 친이 측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생각이다. 이명규 의원이 정 후보를 만나서 한 말은 사실상의 사퇴 권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은 "사퇴 종용은 선거법 위반까지 될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 말 안 할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친이 측에서 먼저 건드린 만큼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기류다. 양측이 속으로 앙금을 쌓아 두고 있는 만큼 갈등 재료가 또 터진다면 경우에 따라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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