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투자자보호는 결코 규제가 아닙니다. 투자자 없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자보호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위한 밑거름입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올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새 장을 열었다. 황건호(58) 금융투자협회장은 2일 본지 인터뷰에서 '자본시장법 전도사'란 닉네임답게 이 법 시행으로 강화한 투자자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그는 "과거에는 '투자자가 어떤 상품을 사길 원하느냐'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 객관적으로 투자자의 투자타입을 처방 하는 절차(Investment with Prescription)를 둬 불완전판매 방지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증시폭락으로 그간 발생한 '묻지마 투자'의 사회적 폐해를 감안하면 옳은 방향이다.
금융상품의 가입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현장의 불만도 귀담아 듣고있다. 그는 "금융선진국에서도 필연적으로 겪었던 성장통(痛)이었다"며 "업계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보완하고, 불필요한 절차는 줄이되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보강한다면 투자자의 불편도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신뢰'를 앞세웠다. 투자자의 신뢰뿐 아니라 신뢰 받는 자율규제를 정립하겠다는 것. 그는 "시장을 이해하고 접목해야(시장친화) 세계적인 자본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자율규제는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자율을 보장하는 서비스"라는 소신을 폈다. 시장시스템은 공적규제가 엄격히 담당하되 영업행위나 금융소비자보호 업무 등은 선진 자율규제로 '저비용 고효율'을 이루겠다는 복안이다.
사실 자본시장법 시대를 맞아 국내 금융업계가 내심 품었던 꿈은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상징되는 투자은행(IB)의 육성.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잇따른 글로벌IB의 몰락으로 미국식 IB모델은 한동안 시장의 사형선고를 받아야 했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IB모델의 실패를 예단하는 건 잘못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인 IB모델의 실패는 제도가 아닌 운영(과도한 차입과 리스크관리 실패)의 문제였다"며 "녹색산업, 혁신형 산업 등 신성장동력 산업의 자금공급에 효율적 역할을 하는 IB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형화(대형사)와 전문화(중소형사), 리스크관리 강화, 금융전문인력 양성 등을 협회 차원에서 지원하면 "금융위기가 우리에겐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는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게 그의 포부다.
국내 증시에 대해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먼저 지난해 FTSE선진국지수 편입에 이어 올해는 MSCI선진국지수 편입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는 "원화의 국제화, 외국인 아이디 등록제도 개선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있지만 외국 투자자들로부터 국내 시장이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편입조건을 갖췄다는 답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이번 금융위기 같은 유사한 상황에 대비하기위해서라도 선진시장 진입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외환위기의 혹독한 경험으로 단단해진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쁠 이유가 없다"면서 "이번 위기도 우리나라 금융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협회 3곳(증권업 자산운용 선물)이 통합한 거대 조직이다. 그만큼 내부살림과 조율이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그는 협회 가입비 최소화, 인원(10~15%) 및 직원(5~10%) 연봉 삭감, 과감한 발탁인사, 외부인사 대폭 영입, 인턴직원 채용 등 다른 협회보다 앞장서 경영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폐쇄적인 조직은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시장 맨'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지론이다.
이성철기자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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