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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2부 <5> 생물의 뿌리는 하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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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2부 <5> 생물의 뿌리는 하나인가

입력
2009.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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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의 육상식물 종은 약 30만 종으로 추정되며, 속씨식물은 그 중 대다수인 25만 종을 차지한다. 찰스 다윈은 속씨식물의 출현을 "지독한 미스터리(abominable mystery)"라고 표현했다. 중생대 백악기 초기 지층까지 보이지 않던 속씨식물 화석들이 백악기 중기부터 갑작스럽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을 이른 말이다.

다윈의 생각대로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났다면 분화가 덜된 속씨식물 화석들이 백악기 중기 지층 이전에 점진적으로 나타나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관찰력이 예리한 다윈에게는 풀기 힘든 의문이었을 것이다.

■ 다윈의 '지독한 미스터리'

1990년대 초반 식물계통학자들이 다양한 식물 종들을 대상으로 같은 유전자들을 조사해 거대한 계통수를 제작한 결과 다윈의 '지독한 미스터리'는 전모를 드러냈다. 린네 이후 식물학자들은 형태학적인 자료에 근거해 종자식물을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누고, 속씨식물은 다시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나누었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적 자료를 통해 보니 속씨식물은 겉씨식물의 일부에서 진화한 하나의 계열에 불과했고, 화석이 발견된 시점보다 훨씬 전인 백악기 초기 이전에 분기하여 독립적인 진화의 길을 걸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속씨식물이 겉씨식물의 일부에 불과한 것처럼 외떡잎식물도 쌍떡잎식물의 기저군의 하나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분자자료에 의한 속씨식물 진화계통의 연구는 형태학적 자료에 근거했던 기존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이 결과는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나누어 식물의 생명현상을 이해하던 식물학 분야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 형태 비교에서 유전체 비교로

이러한 새로운 사실을 속속 밝혀낸 최근의 계통연구는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다윈의 <종의 기원> 에는 손으로 그린 계통수가 하나 등장한다. 현대적 의미의 계통수라기보다는, 생물종이 단선적으로 진화하지 않고 나뭇가지처럼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가며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고 멸종한다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다.

이 개념을 논리적 근거로 정립한 학자가 독일의 곤충학자 빌리 헤니히이다. 그는 1950~60년대 생물종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생물의 진화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는 분지론(分枝論)의 기본 개념들을 정립했다.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분지론이라는 학파를 형성, 논리학과 진화개념를 접목시켜 진화를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발전시켰다.

1970년대 이후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이 이론은 객관적으로 계통수를 제작하는 알고리즘으로 구현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유전체 분석기술이 접목돼 생물의 진화역사를 풀 수 있는 수많은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전체 정보를 컴퓨터로 분석하고 계통수를 그려 진화역사를 추론하는 방법론의 발달은 현재 진화생물학자에게 필수 도구이다.

칼과 방패를 이용한 중세시대의 전쟁이 다양한 신형 무기를 이용한 하이테크 현대적으로 변모했듯이 다윈 시대의 진화 연구가 자연의 관찰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현대에는 다양한 분자분석기술과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다윈이 정립한 진화의 기본 이론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변함없는 중심 이론이며 생물진화를 이해하는 중심 사상이다.

■ 고래의 가장 가까운 사촌은 하마

첨단 무기로 무장한 현대의 분자계통학은 오래도록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를 해결하거나 사실로 여겨 온 지식을 뒤집고 있다. 속씨식물의 진화처럼 동물군에서 새롭게 밝혀진 연구결과의 한 사례는 고래류의 사촌에 관한 것이다.

고래류는 바다에 적응하여 진화하였기 때문에 다른 포유류와 달리 뒷다리가 퇴화했는데, 뒷다리 뼈의 특징을 통해 포유류의 계통을 나누던 기존 시스템에서는 고래류의 진화상 위치가 불명확했다.

다른 여러 가지 특징으로 고래류가 여러 개 발굽을 갖는 소와 같은 목이라는 데까지는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했지만 소목 중 소, 사슴, 하마, 돼지, 맷돼지, 낙타 등 어느 것에 가장 가까운지는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비교해부학적 자료에 근거해 고래류가 소목 전체의 자매군일 가능성, 고래류가 소목 내의 하마류와 자매군일 가능성의 두 가지 설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1990년대 후반 분자계통학자들은 위의 모든 포유류를 대상으로 젖, 단백질, 유전자 등을 분석해 계통수를 제작한 결과 고래의 자매군이 하마임을 밝혀냈다. 얼마 가지 않아 중간 단계의 화석도 발견됐다.

복사뼈가 있는 육상 포유류에서 고래류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의 고래류 화석이 발견된 것은 척추동물 고생물학 분야에서 세기적 발견으로 통한다. 고래는 하마처럼 물과 육지 양쪽에서 사는 소목의 포유류에서 진화한 것이었다.

고래의 예와 같이 분자계통학적 증거들은 화석이 불충분한 경우에도 진화과정을 추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형태학적 자료가 있어도 이를 재해석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 어류와 파충류는 없다

척추동물은 개체가 크고 화석자료가 풍부해 가장 계통 연구가 잘 된 생물군이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분류된 척추동물의 강 분류는 교과서에서 누구나 배워온 익숙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고전적 분류시스템은 진화역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체 정보에 기초한 분자계통도로 보면 양서류, 파충류, 조류, 표유류를 모두 포괄하는 4지(四肢) 동물은 어류 속의 한 계열에 불과하다.

즉 4지 동물은 모두 어류 중 턱이 있는 유악류, 그 중에서도 굳은 뼈를 갖는 경골류의 한 계열로부터 진화한 것이다. 결국 진화적 관점에서는 어류가 곧 척추동물을 의미한다.

비슷한 문제는 또 있다. 4지 동물 중 조류는 파충류의 한 계열에서 진화했다. 따라서 조류를 파충류에 포함시키거나 또는 파충류를 조류, 거북류, 뱀류, 악어류, 공룡류 등의 여러 강으로 나누어야 한다.

현재 급속하게 누적되고 있는 유전체 정보는 척추동물의 진화역사를 추론하는 핵심적인 증거들을 생산하고 있다. 형태 자료에 근거했던 우리의 생각은 종종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있다.

■ 양분법적 시각 수정되다

우리는 생물을 분류할 때 양분법적 구분법을 즐겨 쓴다. 위에 예를 든 속씨식물을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구분하는 것이나, 동물을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로 구분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 밖에도 겉씨식물과 속씨식물, 종자식물과 비종자식물, 관속(管束)식물과 비관속식물 등 무수히 많은 예들이 있다.

린네의 전통적인 생물분류에서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생물들이 동등한 범주로 분류된다. 그러나 진화역사에 근거한 계통분류에 의하면 위에 열거한 전자의 예들은 모두 후자의 일부이다. 척추동물은 무척추동물과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라, 지구상에 먼저 출현하여 다양하게 분화한 무척추동물 중 하나의 계열로부터 진화했다.

즉 동물 계통수에서 척추동물은 무척추동물의 다양한 계열 중 하나와 자매관계다. 마찬가지로 외떡잎식물은 쌍떡잎식물과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라 쌍떡잎식물의 다양한 계열 중 하나로부터 분화하여 발전한, 일부 쌍떡잎식물군의 자매군이다. 따라서 진화역사를 반영한 계통분류는 형질의 양분법적 근거에 기초한 전통분류와는 다를 수 있다.

■ 생명과학의 중심개념 진화

지구상에는 1,000만 종 이상으로 추정되는 생물종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 생물 종의 다양성과 조화는 진화의 산물이다. 이들의 진화역사를 밝혀 이를 반영한 계통분류를 정립하는 것은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계통분류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물들을 대상으로 생명계통수 작성 작업(일명 Tree of Life 프로젝트)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환경부가 주관이 되어 한국 생물의 계통수를 만들고 있다. 그 결과는 우리나라 생물종이 어디에서 기원하여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생물자원을 관리하는 기본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1970년대의 유명한 진화학자였던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생명과학은 진화의 빛을 밝히는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모든 생명현상은 진화의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거꾸로 최근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산출되는 방대한 자료들은 진화현상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히고 있다.

김기중·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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