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결렬될 수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소 지연되는 것 뿐일까.
형식적인 최종 타결 절차만 남은 듯했던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다시 기약 없는 미궁 속에 빠졌다. 여전히 최종 타결을 위한 9부 능선을 넘은 것은 분명하지만, 완전 타결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섣부른 샴페인
외교통상부는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열린 한ㆍEU FTA 8차 협상이 끝난 뒤 "거의 모든 쟁점에 잠정 합의를 도출했다"며 '잠정 타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었다. '거의 모든' 쟁점에 합의를 한 건 사실이었지만, '모든' 쟁점에 합의가 이뤄진 건 아니었다.
특히 남아있는 쟁점 중 관세 환급은 협상 초기부터 '딜 브레이커(협상 결렬 요인)'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첨예한 사안이었다. 관세 환급은 한국의 수출업자가 원자재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때 물었던 관세를 이를 가공해서 만든 제품을 수출할 때 되돌려 받도록 한 제도. 가공 수출이 많은 우리나라로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수출 장려책인 셈이다.
하지만 EU 측은 "관세 환급까지 허용하면 이중 혜택을 주는 것이고, 수출용 원자재를 우리나라에 판매한 제3국이 FTA 혜택을 누리게 된다"며 반대해 왔다. 앞서 EU 측은 멕시코, 칠레 등과 맺은 FTA에서도 관세 환급을 금지했다.
당시 다른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는 "관세 환급 때문에 이번에 최종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수 있는데, 외교부 측이 너무 섣불리 조기 협상 타결을 자신하고 있다"며 "외교부가 자칫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협상 전망은
비록 통상장관 회담에서 최종 결과물을 도출하는데 실패했지만, 한ㆍEU FTA가 결국은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무엇보다 양측이 FTA를 적극 원하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EU 27개 회원국과 일일이 FTA를 체결하려면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세계 최대 시장인 EU 회원국들과 한꺼번에 FTA를 체결해 수출 시장을 넓힌다는 건 우리로선 더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EU 역시 우리나라와의 FTA가 일본,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교두보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대부분의 쟁점에서 이미 합의를 본 상황에서 협상을 아예 깰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 타결 무산이 EU 측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관세 환급 문제를 두고 회원국 간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너무 쉽게 협상을 타결해줄 경우 비판을 받을 소지를 우려해 일단 시간을 끄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선 EU가 다른 분야에서 더 많은 실익을 챙기기 위한 속셈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시간이다. 추가 협상 시기는 EU 내 회원국 간 의견 조율 여부에 달려있는 만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내년 1월 발효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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