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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빚더미 시대] <4> 대학도 정부도 생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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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빚더미 시대] <4> 대학도 정부도 생색만

입력
2009.04.0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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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의 한 사립대 캠퍼스. 평생교육원 뒤편에서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9월 공사를 시작한 이 건물은 내년 초 완공될 예정이다. 이 학교는 지난해에도 중앙도서관 뒤편에 학술연구원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 학교뿐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각종 건물을 짓는 공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전문대를 포함해 전국 189개 사립대의 건물 동 수는 총 7,353개로 전년 대비 279개 늘었다. 한해 동안 학교 당 1.5개 건물을 새로 지은 셈이다.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건설경기가 얼어붙은 요즘도 여전히 '대학은 공사 중'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07년 전문대 포함 전체 189개 사립대들의 토지 및 건물 확보율은 각각 대학설립ㆍ운영기준(대통령령)의 207.9%, 102.7%다. 이미 기준을 충족했다는 뜻이다. 대학설립ㆍ운영기준은 교사(校舍)의 경우 학생 1인당 계열에 따라 12~20㎡, 교지(校地)는 학생 규모에 따라 교사 기준면적의 1~2배 이상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들은 여전히 건물 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7년 한 해 이들 대학들이 건설가계정으로 지출한 돈은 1조 4,641억여원으로, 전체 자금지출의 무려 8%를 차지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은 "대학들이 외형 키우기에만 치중해 건물 짓기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불요불급한 건물을 지어 완공을 하고도 공간을 놀리는 학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캠퍼스마다 번듯한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는 동안, 정작 중심이 돼야 할 교육 환경 개선은 뒷전으로 밀렸다.

특히 도서관 환경은 10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한 게 없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7년 전국 118개 사립대가 도서 구입에 사용한 돈은 총 760억여원으로, 전체 지출의 1.3%였다. 10년 후인 2007년 도서 구입비 총액은 1,194억여원으로 늘었지만,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9%로 오히려 0.4% 포인트 줄었다.

대학들이 보유한 학생 1인당 평균 도서 수도 2000년 43.5권에서 2007년 58.5권으로 15권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른 나라의 명문대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수치다. 2004년 기준으로 미국 스탠퍼드대 학생 1인당 도서 수는 703권이었고, MIT대도 259권에 달했다.

도서관 시설 확충도 제자리 걸음이다. 전국 사립대 학생 수가 2000년 105만 2,938명에서 2007년 109만 7,329명으로 4만 4,391명이나 늘었지만, 같은 기간 도서관 좌석 수는 23만 6,754석에서 고작 753석 증가했다. 결국 도서관 좌석 당 학생 수는 10년 새 4.4명에서 4.6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이 때문에 도서관 자리잡기 다툼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들은 고액 등록금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학비감면이나 장학금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생색내기에 그쳤다.

전국 4년제 대학의 등록금은 1997년(118개) 총 3조 6,628억여원에서 2007년(147개) 8조 6,654억여원으로 2.4배 가량 늘었다. 그러나 전체 등록금 가운데 학비감면액과 장학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11.2%에서 18.2%로 1.6배 증가에 그쳤다.

대학들은 학비감면 규정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체 학비감면액의 30% 이상을 경제 사정이 곤란해 등록금을 낼 수 없는 학생들에게 지원하도록 하고 있지만, 2007년 이 비율은 15.1%로 절반에 불과했다.

더구나 대학들은 가뜩이나 적은 장학금을 교직원 복지로 돌려 빈축을 사고 있다. 연세대, 경희대, 동국대 등 유수 사립대들은 교수, 직원, 법인 사무처 직원의 자녀들이 해당 학교를 다닐 경우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있다. '학업성적 평균 평점 2.0 이상'이란 기준을 내세웠지만, 이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면 누구나 무난하게 충족할 수 있는 기준이다.

사립 J대 교직원 김모(34)씨는 "교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은 노동조합에서 하는 것이 옳다"면서 "대학이 중소기업 이상의 연봉을 받는 교직원들에게 자녀 학자금까지 전액 지원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말했다. 교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을 저소득층 대학생에게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학들은 등록금 분납에서도 생색만 내고 있다. 문패만 걸었을 뿐 분납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분납의 의미가 없는 대학이 절반을 넘는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올해 전국 국공립, 사립대 233곳의 분납제 현황을 파악한 결과, 덕성여대는 분납 기간이 고작 2주였다.

또 동국ㆍ연세ㆍ중앙대 등 43곳(18.5%)이 1개월, 성균관ㆍ이화여대 등 100곳(43.0%)은 2개월이었다. 분납을 신청한 한 학생은 "두 달에 나눠내려면 한 번에 250만원을 모아야 磯? 대학의 생색내기일 뿐 학생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이 안된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교육여건 향상에 소요되는 경비를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하려는 대학들의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황희란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등록금이 오른 것 이상으로 대학의 교육환경이 나아져야 하는데 도서관 시설, 장학금 혜택 등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며 "대학들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황 연구원은 아울러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에도 열악한 대학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면 국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정부, 등록금 대출이자 인하 '찔끔대책'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달 서민생활안정 종합대책과 추가경정 예산안을 통해 총 2,072억원의 예산을 대학 학자금 지원 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본 예산(8,456억원)과 합치면 등록금 관련 예산은 1조원을 넘는다. 지난해(7,173억원)와 비교해도 3,355억원이 늘어, 수치로만 보면 정부가 등록금 문제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대책의 초점이다. 예산 증액에 기댄 정부 대책은 지나치게 공급자 위주 시각에 치우쳐 있어 국민 대다수가 겪는 등록금 고통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산안의 주요 내용을 뜯어보면 이 같은 문제가 금세 드러난다. 1조원이 넘는 정부 학자금 예산 중 절반 가량(4,774억원)은 금리 인하 등 대출 보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연말까지 학자금 대출 이자를 한시적으로 0.3~0.8% 포인트 인하하거나 미취업자의 대출 원리금 상환을 1년간 유예해 준다는 식이다. 교과부는 이럴 경우 5% 이상의 등록금 부담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자신한다.

그러나 현재 대학 등록금 논란의 핵심은 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등록금 수위 자체가 너무 높게 형성돼 있다는 데 있다. 매년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의 2~4배에 달할 정도로 인상을 거듭해 온 고액 등록금이 문제라는 것이다. 시민ㆍ사회단체들이 정부안을 등록금 대책이 아닌 '등록금 대출이자 대책'이라고 혹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대출이자도 한시적으로 찔끔 내리는데 그쳐 대학생 신용불량자 양산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학자금 대출 금리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 올해 1학기 학자금 대출 기준금리는 7.3%로, 4%대인 국고채 금리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반면 등록금 인하와 직결되는 정부 예산은 이공계장학금(134억원), 지방대 인문계열 장학금(897억원) 등 특별한 정책적 장학금을 제외하고는 기초생활 수급자ㆍ근로 장학금(3,423억원)이 전부다. 수혜 대상도 9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정부의 정책 파트너인 여당은 아예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인 2006년부터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까지 '반값 등록금' 정책을 중점 민생법안의 하나로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돌연 이 내용을 공약에서 쏙 빼버렸다. "반값 등록금은 등록금 자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반으로 완화하려는 취지인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후 한나라당은 대학 등록금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정부가 등록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저소득층 장학금도 수혜율은 2.6%에 불과하다"며 "이자 보전과 같은 찔끔 대책만 내놓고 생색을 낼 것이 아니라 고액 등록금을 줄일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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